미국 외교관 눈에 비친 110년 전 서울의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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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차군사령관의 관저로 쓰인 서울 중구 소공동 대관정(大觀亭)에서 촬영된 을사조약 기념사진.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첫째 줄 왼쪽 다섯 째)이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다. 이 사진은 이전에 공개됐으나 거기엔 맨 오른쪽에 기모노를 입고 서 있는 일본인 여성이 빠져 있었다.

190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 170여 점이 1일 공개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날 “구한말 주한 미국공사관 부영사를 지낸 윌러드 스트레이트가 찍은 사진 174점과 학술논고 2편을 묶어 『코넬대학교 도서관 소장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서울사진』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고 1일 밝혔다.

구한말 희귀사진 170점 공개

스트레이트는 1904년 로이터 통신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이듬해 미국공사관 부영사로 임명됐다. 도시 풍경이나 역사적 사건 등이 담긴 사진을 찍어 본국 귀국 후 미국 코넬대에 기증했다. 이 중 일본군 사령부 정문 사진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대한제국 시절 일본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어 가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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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차군사령부가 주둔한 대관정의 정문 앞에서 일본군 병사 2명이 경비를 서고 있다.

해당 사령부는 1904년 4월 서울 중구 소공동 대관정(大觀亭·현 웨스틴조선호텔 인근)에 주둔했다. 정문에는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그해 2월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고 같은 해 4월 서울에 처음으로 군 사령부를 설치했다.

조선 24대 임금 헌종의 계비(繼妃)였던 효정왕후의 국장(國葬)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이번에 처음 소개됐다.

사진 더 보기 일본군, 110년 전 서울 시내 행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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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의 계비인 효정 왕후의 국장으로 추정되는 사진. 행렬이 동대문 밖에서 경릉 쪽으로 향하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 후 대관정에서 촬영된 일본 고관들의 기념사진도 책에 수록됐다. 기존에 공개된 사진에서는 지워져 있던 일본인 여성의 모습도 실렸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런 사진에 등장할 정도면 신분이 높은 여성일 텐데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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