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이 본 2015 지구촌 현장] 11월의 프랑스 - 파리 곳곳 IS 연쇄 테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기사 이미지

11월 14일 테러현장인 파리 르카리옹 바의 유리창 총알 구멍에 장미꽃과 종이가 꽂혀있다. 종이엔 “누구의 이름으로?”라는 뜻의 프랑스어가 적혀 있다. [파리 AP=뉴시스]

올 한 해는 파리로 시작해서 파리로 끝난 듯합니다.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공화국광장에 있었습니다. 당일 광장은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즈 쉬 샤를리(Je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 구호가 광장을 삼켰습니다. “리베르테(Liberté·자유)”로도 가득했습니다. 숭고한 가치를 지킨다고 믿는 이들의 얼굴에서 종종 보이는 광채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11월의 테러는 달랐습니다. 대부분 테러 현장이 공화국광장 인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날 공화국광장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흐른 뒤에야 북적였습니다. 사나흘 지났을까, 공화국광장에서 ‘펑’하는 소리가 났는데 광장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공포 속에 질주를 했습니다. 테러 현장이던 한 레스토랑 앞에서도 유사한 소음에 도망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11월의 파리 테러는 프랑스인들에게, 더 나아가 유럽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연을 보거나 차를 마시는 행위가 테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근원적 공포입니다.

  프랑스 당국은 최근 23살의 여성이 임신한 듯 가짜 배를 하고 있는 걸 적발하고 테러 용의자로 체포했습니다. 여성의 컴퓨터에서 ‘이슬람국가(IS)’ 선전물이 나왔다는 겁니다. 여성은 “도둑질하려고 만든 배”라고 맞선답니다. 최근 영국에선 한 쇼핑센터에 긴 칼을 본 쇼핑객들이 패닉에 빠져 대피했습니다. 경찰이 “테러는 아니다”고 달래야했습니다.

기사 이미지

 유럽인들은 이제 존재론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절차적 정당성보단 테러 방지란 목적을 앞세울 것인가. IS란 거악(巨惡)의 섬멸을 위해 못지 않은 거악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협상할 것인가. 공습으로 인한 시민들의 희생 또한 감내할 것인가. 무슬림계 유럽인은 그 자체로 충돌적 자아인가. 어느 것 하나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럽의 고통입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