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착한 개혁 끝, 이젠 거친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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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8일 서울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송년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금융개혁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사진 금융위원회]

올 2월초 금융당국은 금융계 최고경영자들을 불러모아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범금융권 대토론회에서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임종룡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었다. 그는 “금융사 스스로 할 수 있는 건전성 규제는 대폭 완화해야 한다”며 과도한 감독 관행 개선과 규제 완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에 ‘절절포’를 외쳤다. ‘규제 완화는 절대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엄한 시어머니’인 규제 당국을 상대로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의 발언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물론 그가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고위 관료 출신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비판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 그는 금융위원장이 됐다.

거래소 지주회사 체제 개편하고 은행·증권간 칸막이도 낮출 듯

 임 위원장은 28일 금융위원회 기자단 송년회에서 지난 9개월의 소회를 밝혔다. “지난 9개월 동안 금융개혁이란 한 가지 주제로 움직였다. 부임 이후 받았던 소명도 금융개혁이었다. 금융개혁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올해를 살았다.” 그는 이제 금융개혁의 씨앗은 뿌렸다고 자평했다. 국민의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직 멀었지만 “이제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봤다.

 임 위원장은 “내년에도 금융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금융개혁 방향은 ‘거친 개혁’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개혁은 ‘착한 개혁’이었을거다. ‘착한 개혁’은 누구나가 공감하고 해야 한다고 인지하는, 큰 줄기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것들이다. 앞으로는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겠다. 반대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때론 그것을 뛰어 넘기도 하고, 설득해야 할 사람들 설득하겠다. 수십 년 쌓인 관행을 바로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고, 착근할 수 있도록 지속하겠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거친 개혁’의 예로 거래소 지주회사 체제 개편을 들었다. 지역과 회원사, 노조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도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은행업과 증권업의 업무 범위 등 금융계의 오래된 과제도 내년에는 해결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당국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그동안의 금융 개혁이 인터넷은행 도입 등 가시적 성과가 있었지만 ‘조용하고 무난한 개혁’에 머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진짜 개혁이라면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띠를 동여매고 벌떼처럼 덤벼드는 ‘시끌벅적한 개혁’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임 위원장의 ‘거친 개혁’은 이 같은 비판적 시각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임 위원장은 올해 금융개혁의 가장 든든한 ‘후원군’으로 금융감독원, 금융회사, 언론을 꼽았다. 그는 “금감원이 현장의 접점에서 금융개혁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주역이었다”고 평가했다. 임 위원장은 농협금융지주 회장 시절, 사석에서 감독당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기재부 차관을 지낸 나한테도 이렇게 할 정도면 다른 금융회사엔 어떻게 했겠느냐”는 말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원장 취임 첫날 금감원을 방문, ‘금융개혁 혼연일체’ 액자를 전달하고 금감원을 ‘금융개혁의 유능한 파트너’로 적극 껴안았다.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에 3000여 개의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언론에 대한 고마움도 표했다. “금융개혁 과정에서 이른바 ‘우간다’ 비난이 나왔던 8~9월쯤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대국민 담화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금융경쟁력과 관련해 한국(지난해 기준 80위)이 아프리카 우간다(지난해 기준 81위)보다 못하다고 질타했다. 그 이후 ‘우간다 비난’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임 위원장은 국회 상황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금융개혁 법안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 없이 누구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어떠한 정치적 이해에도 걸려있지 않고, 여야간 합의를 거쳐 정부와 조문까지 조율을 마쳤는데도 입법 조치가 진행되지 않아 너무 아쉽다. 답답하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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