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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영의 불붙는 난간|최해군 달인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문학속에서 흙냄새 물씬 풍기는 토착적 인간상이 자꾸 사라져 가고있다.
더구나 80년대의 작가들-효율적인 근대화운동이 시작된 연대를 살아온 세대, ○×와 선다형(선다형)시험에 의한 다이제스트 세대, 능력과 결과만을 보고 박수를 보내는 기교주의 세대에 의한 작품속에서는 매끄럽고 감각적인 문장과 컴퓨터로 조립한듯한 치밀한 사건전개는 있으나 해학적이고 구수한 한국적 인간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이균영의 『불붙는 난간』(문학사상)은 흥미를 돋운다. 서투른 독자라면 홀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배종기가 온갖 풍상을 겪으며 고향을 버리고 K시로 가서 암흑가의 왕자가 된 과정과 생활에 매료될 수도있다. 수단이야 어쨌건 그 선악에 관계없이 방문제를 해결한 배종기는 가슴을 파고드는 고독감을 달래는 방법으로 학대받았던 고향을 다시 찾는다. 고향엔 대지주요 국회의원을 지낸 이석구를 할아버지로, 그 배경으로 비록 낙선되긴 하나 선거때면 출마하는 이정준을 아버지로 모신 지방 말단 공무원인 친구 신욱이 있다. 60년대 이후의 근대화 과정속에서 변신하지 못한 토착부르좌였던 신욱의 집안은 사양길에 접어들어 대학진학도 못한 누이동생 수진이 화장품외판까지 하는 처지가된다. 아버지 정준은 「멀리 타도의 사람많은 도시」 「옆사람들에게 드러나지도 않을 아파트」로 떠날 심산으로 고속버스 회사에다 유서깊은 집을 팔 결심이다.
수진과 사랑의 도피에 나선 배종기는 도박판 돈을 신욱에게 보내며 집을 팔지 말 것을 종용하나 이정준은 말한다. 『그것은 종기의 돈이다. 종기에게 돌려주어라』, 그리고 종기를 따라나선 딸 수진에 대해서는 『스스로 제길을 결정할 것이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작품구성으로 봐선 작가의 의도가 ,애매하다. 한토착 부르좌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감상적으로 동정하는 느낌도 있고 새시대에 적응못하는 토착 부르좌의 무능을 배종기로 상징되는,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근대화파와 대비시킨 인상도짙다. 그러나 우리가 주시해야될 점은 풍족한 생활의 향유라는 근대화의 목적을 달성한 배종기가 정신적 공허감을 메우기 위하여 추구하는 한국적 삶에 대한 애착이다. 가문·전통, 그게 허영이 아닌 생활의 실체로서, 사회와 민중의 본보기로서 존재했던 시대에 대한 동경을 누가 복고주의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불붙는 난간』이 토착 부르좌의 한 인간상을 제시했다면 최해군의 『달인(달인)의 죽음』 (한국문학)은 하류층 농민상으로서의 토착미 있는 한 인간상을 구수하게 그려준다. 일자무식의 설석근은 일제때 씨름판에서 읍내 사람편을 드는 심판을 메어꽂고 만주에서 6∼7년 떠돌다 절름발이로 귀향, 징용을 면한다. 해방되자 절름발이 행세는 거짓임이 드러났고 좌·우익의 틈바구니에서 뱃심과 지혜로 마을사람들을 보호한다. 면의원까지 지내며 지방토착 명물이 된 설석근은 근대화 바람을 타고 생긴 마을앞 연광이 냇물을 메워 농사를 못짓게된걸 사람들이 각방에 하소연해도 안되자 노인의 몸으로 소장과 담판하다가 넘어져 다쳐 죽는다. 병석에서 석근은 연광소장을 고소하자는 이웃에게 『내가 잘못해서 넘어졌는데 왜 소장 탓해!』라고 말한다.
「행동거지가 가벼운듯 하면서도 무거웠던」 사람, 「공치사는 일체 입밖에 내질않는」 인간상, 「앞만 바라보고 앞일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설석근은 기지와 해학과 뱃심과 의리와 인간미를 두루 지닌, 사라져가는 한국적 하류 토착민의 한 전형을 느끼게 한다. 작품 구성상의 미숙이나 필요이상의 곁가지에도 석근이 지닌 인간상의 창조란점에서 이작품은 흥미를 끈다.
요컨대 귀족층의 한 전형으로서 『불붙는 난간』의 이석구·이정준 상이나, 하층 농민적 토착미의 한 표본으로서 『달인의 죽음』의 설석근은 그 계층의 차이나 삶의 수준에 관계없이 효율성 위주의 세태에 밀러 사라져 가는 우리시대에 보기 어려운 한국인상을 제시해 주고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필자약력
▲중앙대 국문과졸 ▲중앙대강사 ▲독서신문주간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 『창조와 변혁』 등 평론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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