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어쩌다 효도도 계약으로 하는 세상이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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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불효(不孝) 자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돌려주라”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부모에 대한 부양 문제가 재산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볼썽사나운 데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줬던 근본 사상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아무리 물질만능 사회라 하지만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마저 계약서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법원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충실히 부양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도 이를 이행치 않은 아들에게 ‘증여계약의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특히 “민법은 직계 혈족 및 그 배우자 간엔 서로 부양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증여 계약과 상관없이 아들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아들은 2003년 부모로부터 집과 토지 등을 물려받은 직후부터 돌변했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 같은 집 1, 2층에 살면서도 거의 말도 하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간병 대신 요양시설로 보내려고 해 갈등을 빚었다. 급기야 아버지가 집을 팔아 따로 나가려고 하자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고 윽박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자식에게 재산을 한 푼도 안 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무서워서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우습게 들리지 않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변호사 업계 등에선 ‘효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 등이 나오고 있다. 상속하는 부동산과 현금은 일일이 열거하고, 부양 받는 방법 등은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등의 법률 조언까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도 불효자에게선 재산을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 방지법을 내놓았다.

 법과 제도로라도 효도 사상을 유지하겠다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고육지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뒷맛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효도를 강제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재산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형식적으로 효도를 하는 것을 효도라고 할 수 있을까. 법에 따라 불효를 한 자식을 처벌하고 재산을 돌려받는다 해도 상처 받은 부모의 마음까지 치유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효도를 강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인성교육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자식의 배신에 대비한 각종 계약서가 아니라 진정한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윤리적 교육 체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입법이나 판결을 통해 효도 사상을 강요하는 현실이 민망하고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