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역사적 위안부 담판, 일본의 진정성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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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일 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 담판이 오늘 서울에서 열린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어제 있었던 양국 국장급 회담 결과를 토대로 일대일 담판을 시도한다. 결과에 따라 한·일 관계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고, 교착상태를 지속할 수도 있다. 오늘 회담이 좋은 결실을 맺어 한·일 관계 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양국 최대 현안 해결할 절호의 기회
회담 앞둔 일 언론 일방적 보도 유감
관건은 일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 원칙에 합의했지만 후속 실무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또다시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지난 24일 아베 총리가 기시다 외무상의 방한을 전격 지시함에 따라 오늘 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과 검찰의 항소 포기, 헌법재판소의 한·일 청구권 협정 헌법소원 각하 결정 등으로 한·일 관계의 잠복된 악재들이 제거된 상황이 아베 총리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에 따라 양국 간 최대 현안이자 난제인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호적 분위기와 여건이 조성된 것은 맞지만 결과를 낙관하긴 힘들다. 아베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본 언론의 일방적 보도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과 함께 구체적 액수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마치 위안부 문제의 핵심이 돈 문제라는 식의 보도다. 민간단체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한 위안부 소녀상은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다른 데로 옮기기로 했다는 등 터무니없는 보도까지 나왔다. 담판을 앞두고 일본 정부와 언론이 공동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보편적 여성의 인권 문제인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 아베 총리 개인 명의로 어정쩡한 사과를 하고, 위로금 성격의 돈 몇 푼 지급하는 것으로 할 일 다했다는 식이라면 일본이 바라는 ‘완전한 해결’은 영영 불가능하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종결됐다는 입장을 일본이 고집한다면 오늘 회담은 하나 마나다. 외교 협상의 기술적 부분에 대해서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원칙까지 훼손할 순 없는 일이다. 오늘 담판의 성패는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의지와 진정성에 달렸다.

 일이란 때가 있는 법이고,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이 기회에 위안부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함으로써 일본 스스로 반(反)인도주의적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본의 진심이 통한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먼저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자고 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