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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가 압도하는 미국 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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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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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나이로만 따지면 미국 대선은 70대가 40대를 압도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공화당의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2017년 취임하면 그해는 두 사람이 각각 미국 나이로 70세와 71세가 되는 해다. 두 사람 중에서 당선자가 나오면 미국 역사상 기록도 만들어진다. 대통령 취임일(2017년 1월 20일)을 기준으로 힐러리(취임식 때 69세3개월)가 되면 로널드 레이건(69세11개월) 이후 역대 둘째 최고령 대통령이 되고, 트럼프(70세7개월)가 되면 레이건을 넘어서는 역대 최고령 대통령에 오른다.

 민주당 경선은 버니 샌더스(74) 상원의원이 한때 힐러리를 위협하며 처음부터 노장 간의 경쟁이었다. 마틴 오맬리(52)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 언론도 주목하지 않는다.

 공화당에선 40대인 테드 크루즈,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트럼프를 뒤쫓고 있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선 트럼프의 위세에 눌리고 있다. 크루즈와 루비오를 힐러리, 트럼프와 비교하면 ‘띠동갑’일 정도로 나이가 차이 난다. 트럼프는 46년 개띠인데 공화당 후보 2위인 크루즈는 70년 개띠다. 힐러리가 47년 돼지띠이고, 루비오는 71년 돼지띠다. 크루즈와 루비오는 모두 과거 한국 정치의 ‘40대 기수론’을 연상케 하는 ‘젊은 보수’를 한때 내세웠지만 표심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힐러리의 경륜과 트럼프의 말발이 나이에 대한 관심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힐러리는 올봄 “당선돼 연임하면 (미국 나이로) 77세에도 대통령 자리에 있게 된다”고 공화당 일각에서 문제를 삼자 “내가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대통령”이라며 받아넘겼다. 고령 대통령을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이슈로 치환시켰다. 지난 10월 11시간이나 계속된 하원 청문회 때 심리적 침착함까지 보여줘 워싱턴포스트가 ‘힐러리의 체력’을 화제로 전했다. 트럼프는 자기보다 어린 경쟁자들을 미국을 이끌 힘이 부족한 후보들로 몰아붙였다. 젭 부시(62)를 놓곤 그의 유세 도중 앉아서 졸고 있는 여성 지지자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유포하며 조롱거리로 만들었고, 크루즈와 루비오를 겨냥해선 경력이 일천하다며 ‘경량급 후보’로 격하했다.

 현재까지의 미국 대선을 정리하면 ‘어린 나이=정치적 젊음’이라는 공식이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일부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공화당 지지층으로부터 ‘워싱턴을 바꿀 최적임자’라는 개혁 후보로 평가받았다. 한국 정치로 보면 원래 ‘정풍’과 같은 개혁 슬로건은 소장파 정치인의 단골 메뉴였는데 미국에선 막말 폭탄을 연일 터뜨리는 트럼프가 이 자리를 차지했다.

 수년간 계속됐던 힐러리 대세론에 민주당 안에선 새 얼굴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고, 공화당에선 트럼프가 나타나 자기보다 어린 후보들을 후발 주자로 밀어내 결과적으로 ‘젊은 후보’가 부각되지 않는 게 미국 대선의 특징이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