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일이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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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34면

마감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 쓰기 힘들지 않느냐? 회사 다니고 시간도 없을 텐데 글은 언제 쓰느냐? 나는 수줍게 대답한다. 내일 씁니다. 마음은 언제나 내일이라서요. 아니, 마감은 언제나 내일이라서요.


내일에서 온 신문


독일 사는 후배 연우는 유학생 시절 신문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음날 조간 신문을 몇 시간 일찍 동네 선술집인 펍을 돌아다니며 파는 일이었다. 정기구독 신문보다 가격이 비싼 신문을 팔기 위해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신문은 내일에서 온 신문입니다. 이 신문 속에 내일이 있습니다. 내일을 사세요. 펍에서 저녁 대신으로 맥주와 값싼 안주를 먹는 손님들은 후배의 신문을 잘 사주었다. 그들은 정말 내일을 샀을까? 어쩌면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의 내일을 사준 것이지 모르겠다.


새벽이다


오래 전 TV에서 이런 코미디를 본 적이 있다. 산동네의 옥탑방. 밤이다. 청년 서너 명이 한 방에서 자고 있다. 한 사람만 빼고. 최양락은 혼자 일어나 불을 켜고 벽시계를 본다. 그날은 12월 31일, 시계는 11시 59분을 가리키고 시침은 막 30초를 지나고 있다. 그는 잠든 친구들을 내려다본다. 한심하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데 잠이나 자고 있단 말인가. 그는 친구들을 깨운다. 잠에서 깬 친구들은 처음엔 투덜대다가 하나같이 카운트다운을 한다. 5, 4, 3, 2, 1, 와! 새해다! 새해가 밝았어! 그들은 감격한다. 부둥켜 안고 팔짝팔짝 뛴다. 한 사람만 빼고. 아랫목에 누운 최양락이 짜증을 부린다. 야, 새벽이야. 불 꺼.


새해도, 내일도 아직 오지 않았을 때 의미가 있다. 와버리면 특별한 내일도 그저 평범한 오늘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의 새


이를 테면 내일은 박남수 시인의 시 ‘새1’에 나오는 순수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어릴 때 안다 형은 내일이 대체 언제인지 궁금했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내일이 언제야?”


“내일? 내일은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날이 내일이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오늘이 내일이야?”


“오늘은 오늘이지. 내일은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이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또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이 내일이지?”


“넌 누굴 닮아 이렇게 머리가 나쁘니? 오늘은 오늘이라니까. 내일은 하룻밤을 자고 난 다, 음, 날이라고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해줬잖니!”


그제서야 어린 안다 형은 깨달았다.


“엄마, 이제 알겠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내일이란 없구나.”


발명


누가 내게 인간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인간은 내일을 발명한 동물이라고. 인류가 동물과 다른 길을 간 결정적인 갈림길의 이정표에는 ‘내일의 발명’이 쓰여 있을 거라고. 인류의 진화와 발전은 모두 내일이라는 관념에서 튀어나왔다고. 내일이 있으니까 농사를 짓고 공장을 세우고 법과 제도를 만든다. 내일이 있으니까 철학을 하고 문학을 쓰고 역사를 기록한다. 교육도 하고 연구도 하고 개발도 하고 투자도 한다.


내일이 있으니까 우리는 오늘을 참고 견딘다. 혼용무도의 세상을. 상식이 침몰하고 불의가 창궐하는 세상을. 오늘은 비참하지만 내일은 좋아질 거라고. 오늘은 고단하고 암담하지만 내일이면 경제도 활기를 찾고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거라고. 사람 사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는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좋은 것, 바람직한 것, 정의로운 것들이 모두 내일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일의 헛된 희망이 오늘의 불행을 만든다. 누가 내게 인간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인간은 내일 때문에 결국 망한 동물이라고.


기승전내일


첫 문장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마지막 문장을 쓰는 것도 힘들다. 어떻게 마무리 하느냐에 따라 글의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진다. 웃기고 싶은데 아무리 궁리해도 참신한 결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절망한다. 절망한다고? 절망, 정말? 절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오늘이 있는 한 내일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마무리는, 정말 멋진 마지막 문장은 내일 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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