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단수추천 문제없어", 김태흠 "험지론=전략공천"…전운 감도는 새누리 공천특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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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공천제도특별위원회는 첫 공식회의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성탄절인 25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는 황진하 사무총장을 비롯한 특위 위원 13명 전원이 참석했다. 지난 22일 상견례를 겸해 주요 안건을 정한 이후 사실상 첫 회의였지만 '전략공천', '컷오프' 등 민감한 용어들도 거론됐다.

황 총장의 인사말 이후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될 예정이었지만 김재원 의원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김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당 공천관리위 부위원장을 맡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재 당헌·당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단수 후보자 추천이나 우선추천지역 선정에 대해선 당헌당규나 공천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여러가지 논란이 제기되는 것 같다”며“이미 특위가 가동되고 있으니 당내에서는 더이상 논란을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공직후보자 선거 방식은 국민참여선거인단에 의한 경선, 여론조사 경선, 단수추천, 우선추천지역 등 4가지”라며 “명백히 당헌당규에 있는 사실을 없다고 하거나, 당헌당규상 충분히 활용됐던 제도에 대해 문제삼는 건 공천특위 활동 방식에 대해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불쾌함을 토로했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단수추천제는 안된다”고 못박는 등 당규에 있는 내용을 부정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단수추천이란 여러 공천 신청자 가운데 타 후보에 비해 경쟁력이 월등한 후보가 있다면 경선을 치르지 않고 공천하는 것으로 당규에도 명시돼있다.

현행 당규를 개정하겠다는 것인지 혼선이 생기자 김 대표는 다음 날 “어느 지역에 한 사람만 공천을 신청했을 경우 공천을 확정하든지, 적임자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찾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를 단수추천제라고 한다”고 허용의 여지를 남겼다.

김 의원은 “당헌당규상 공천제도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생각도 있고 경험도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도 이런 방식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었고, 우리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나름의 길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현행 당헌당규를 존중해줄 것을 재차 강조했다. 회의 시작 전부터 김 의원이 펼쳐보던 당헌당규집에는 곳곳에 빨간 포스트잍이 붙어있거나, 형광펜으로 밑줄이 쳐져있었다.

친박계 강성으로 불리는 김태흠 의원도 “오늘 회의에 처음 왔으니 한마디 하겠다”며 황 총장의 만류에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공정성·투명성보다 중요한 건 상대 후보를 이길 경쟁력있는 후보를 선정할 공천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며 “당내에서 나오는 험지론(명망 있는 인사들의 수도권 등 출마)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험지론이 곧 전략공천인데, (김무성 대표가) 전략공천은 없다고 하면서 험지론을 얘기하니 국민들이 헷갈린다. 전략적 판단에 의한 공천이나 전략공천이나 똑같은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황 총장을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전략공천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면 특위에서 전략공천을 공식 안건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전략공천을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김 대표의 입지는 굉장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 “전략공천은 없다”고 늘 공언해왔다.

이미 야당과의 협상 불발로 여야 동시 오픈프라이머리는 물건너 갔으니, 전략공천을 없애고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 등을 높이는 상향식 공천을 통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겠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하지만 친박계는 ‘이기는 공천=전략공천’ 프레임으로 김 대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첫 회의부터 친박계의 공세가 이어지자 권성동·정미경·홍일표 의원 등은 큰소리로 황 총장에게 “비공개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다. 공개 발언 희망자가 속출하자 “1분씩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주겠다”던 황 총장은 계파 갈등이 표면화되는 걸 우려해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회의 시작 전에는 권 의원이 당 윤리관이기도 한 친박계 김도읍 의원이 들어서자 “(판관) 포청천”이라며 일어서서 악수를 건네고, 김태흠 의원은 권 의원에게 “성동 형님은 내가 인정한다. 지역구에서 당내 경쟁자도, 야당 경쟁자도 없다”고 치켜세우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금새 진지한 표정으로 바꼈다. 황 총장은 회의 시작 전 “공식적으론 첫 회의라 그런지 분위기가 엄숙하다”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비공개 회의에선 김태흠 의원 등이 '현역 의원 컷오프'의 필요성도 주장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당 지지율보다 현역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 등 경쟁력이 부족하거나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는 과감히 쳐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전략공천과 컷오프도 의제에 포함할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대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로 출마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김 대표는  "(컷오프를) 하려면 나를 죽이고 하라"고 할만큼 강경하다.

특위는 27일까지 릴레이 회의를 열어 공천룰을 최대한 빨리 정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사안마다 계파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있는 만큼 진통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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