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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 눈보라 이겨내고 불끈 서해대교 5인 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서해대교 화재 100m 상공의 주탑 가로보에 올라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 5명이 1계급 특진한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상희 유정식 김경용 박상돈 이태영 소방관 사진=경기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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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주탑 기둥에 가려 진화가 어렵습니다. 이러다가 케이블이 또 끊어질 수 있습니다.”(김경용 소방사)

“본부, 직수(화마에 직접 쏘는 방법)로는 불가능하다. 방수(케이블을 적셔 물을 흘려내리는 방법)로 전환해야 한다. 지시를 내려달라”(박상돈 소방위)

“즉시 방수로 전환하라”(소방본부)

지난 3일 오후 6시12분에 발생한 서해대교 2번 주탑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나눈 대화내용이다. 오후 7시쯤 케이블 하나가 끊어지면서 동료 소방대원이 병원으로 후송된 터여서 또 다른 케이블이 추가로 끊어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에 평택소방서 119구조대 박상돈 팀장(소방위)과 유정식 소방장, 이태영·김경용·박상희 소방사 등 5명이 오후 8시 주탑과 주탑을 연결하는 100m 높이의 가로보에 올랐다. 이어 45kg에 달하는 수관(소방 호스) 13개를 30여분 만에 가로보로 끌여 올린 뒤 진압에 나섰다. 15m 거리까지 접근했지만 화마가 주탑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강풍과 눈보라에 바닥은 미끄러웠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30여분 간 직수를 하며 사투를 벌였지만 화마를 잡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케이블이 추가로 끊어져 2차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박 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침착하게 대응 방안을 생각했다. ‘화마에 직수가 안되면 케이블을 적셔 잡는 방법을 쓰자’는 판단이 섰다. 박 팀장은 이같은 내용을 소방본부에 보고했고 오후 9시1분에 방수 지시가 떨어졌다.

이후 김경용 소방사가 난간 사이로 머리와 어깨를 내밀고 케이블 방수를 시작했다. 이태영 소방사는 김 소방사의 추락 방지를 위해 뒤에서 끌어안고 무게중심을 잡아줬다. 유정식 소방장과 박상희 소방사 등 4명의 대원들은 이런 방법으로 번갈아 가면서 진압했다. 그렇게 위험을 무릎 쓰고 진화하기를 40여 분 만인 오후 9시43분 화마를 잡는 데 성공했다.

박상돈 팀장은 “당시에는 빨리 불을 꺼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을 뒤로 한 채 화재 진압에 나서 준 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존경하는 선배(故 이병곤 센터장)를 잃었지만 국가적 재앙을 막을 수 있어 슬픔과 보람을 함께 느꼈다”며 “선배께서 평소 하신 ‘가슴이 뛴다’는 말씀처럼 선배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팀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들 5명에게 1계급 특진시키기로 했다. 박상돈 팀장은 소방위에서 소방경으로, 유정식 소방장은 소방위로, 이태영·김영용·박상희 소방사는 소방교로 각각 특진된다. 남 지사는 내년 1월 4일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열리는 시무식에서 이들에 대한 임용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남 지사는 “강풍속에서도 100m 높이의 주탑에 올라 화재를 진압해 2차 피해를 막은 5명의 소방관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에 감사 드린다”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귀중한 생명을 구한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말했다.

수원=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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