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다시 힘을 내야 할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기사 이미지

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위기를 감지한 것은 이달 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거액을 기부한다는 뉴스를 읽으면서다. 이제 막 세상에 온 자신의 딸 맥스가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페이스북 지분의 99%에 달하는 450억 달러(약 52조원)를 사회에 내놓겠다는 아름다운 결정. 그런데 이 사연을 읽으며 감동으로 벅차 오르기는커녕 심술만 솟아오르는 거다. 좋겠다, 저커버그는. 어리고(31세), 사랑하는 가족도 곁에 있고, 돈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여기 불우한 이웃에게도 좀 나눠주지.

 올 한 해 히말라야에서 조난을 당한 것도,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사투를 벌인 것도 아니다. 한데 나의 마음은 왜 이렇게 황폐해지고 만 것인가. 왜 2016년 도라에몽 달력을 넘기고 또 넘겨도 기대와 희망 같은 건 샘솟지 않는가. 급히 반성모드에 돌입해 회사 책상 옆에 쌓아놓은 책더미를 뒤적인다. 『긍정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저자는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고 믿는 마음이 어떻게 진짜 현실을 바꿔놓는가를 여러 동물·인간 실험을 통해 밝혀낸다. 그러고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기만을 하라”고 말한다. 『화씨 451』이란 소설로 유명 작가가 된 레이 브래드버리는 젊은 시절 온갖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가 벽을 가득 채울 만큼의 거절 편지를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 잘 될 거라 믿으며 매일 네 시간씩 고기 포장용 종이에 글을 썼다. 말년,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그는 말했다. “눈보라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다.”

 또 한 권을 찾아냈다. 올해 출판담당 기자로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서평을 썼으니 적어도 52권의 책을 읽은 셈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은 책은 독일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에서 부고기사 담당으로 일했던 저자가 쓴 『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다. 저자는 보통 같으면 신문에 나오지 않을법한 일반인들의 삶과 죽음을 취재해 글로 썼다. 그러면서 모든 이의 삶에는 고유한 특별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수많은 질병과 싸우면서도 놀랄 만큼 명랑했던 한 젊은이가 세상에 남긴 수첩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크게 외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하루의 끝에서 ‘내일 다시 해보자’고 말하는 작은 음성이 용기일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울 각오를 하고 꺼낸다.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시인들이 마음으로 받아적은 『엄마, 나야』란 책이다. “아빠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이라고,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좋았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라는 아이들의 고백은 “봄이 오고 있어요. 봄에는 부디 따뜻한 꿈을 꿔 주세요”라는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2015년을 일주일 남겨두고, 새해엔 치열하게 자기 기만을 해보리라 다짐한다. 저커버그처럼은 아니더라도, 너무 일찍 떠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 더 나은 ‘이곳’을 위해 조금 더 애써 보자고.

이영희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