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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경제개혁 1년 시장경제 실험중] 下. 달라진 기업 환경

중앙일보

입력

발포제 생산 업체를 운영하는 락연합작회사의 이순희(52.여)사장. 그는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방식의 군고구마 판매로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7.1 조치 후 새로운 수입원을 물색하던 그는 고구마 값이 수확기인 10월에는 kg당 10원에 불과하지만 봄철에는 65원까지 오른다는 데 착안해 군고구마를 팔기로 했다.

보관 시설을 갖추고 고구마 선도 유지법까지 개발한 李사장은 올해 초 평양 시내 최대 주택가인 통일거리에 16개소의 군고구마 매대(판매점)를 열고, 64명의 가정주부를 판매원으로 채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질 좋은 고구마를 확보하고 관리에 신경을 써 봄철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李사장은 이익금 가운데 법인세에 해당하는 '기업이득금'과 제반 비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1인당 5천원씩 판매원에게 분배했다.

보통 남편들이 받는 월급이 2천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올해 들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7.1 조치 이후 나타난 북한 기업의 새로운 변화로 李사장의 경영방식을 여러 차례 평양발로 보도했다.

실제로 이 회사가 업종 다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것은 7.1 조치로 기업들의 경영 자율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익금 중 국가에 내는 몫이 줄어들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실적 위주 평가=7.1 조치 이후 가장 크게 변화된 북한의 기업환경은 실적 평가 지표가 생산량에서 '번 수입'으로 바뀐 것이다. 과거 기업평가는 주로 계획된 생산량의 달성 여부가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7.1 조치 이후에는 생산량 달성 여부와 함께 기업이 벌어들인 현금이 더 중요한 지표로 도입됐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 교수는 "과거 품질을 따지기 전에 국가 계획을 얼마나 수행했는가 하는 '서류상의 생산량'이 중요했으나 이제는 제품을 팔아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환경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특히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7.1 조치 이전에 기업소와 공장들의 부채를 완전히 탕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일본 조선사회과학자협회 강일천 연구기획부장은 "국가나 은행에서 빌린 기업의 부채가 기업자본금으로 전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오는 7월부터는 기업간 거래도 현금으로 이뤄질 전망이라고 평양에 합작공장을 운영 중인 유완영 IMRI 회장이 밝혔다.

구조조정=기업 평가 기준이 바뀌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 자재 확보를 위한 기업간 치열한 경쟁이다. 좋은 자재를 확보해 제품의 질을 높여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단둥(丹東)의 제일무역회사 배동호 사장은 "과거에는 무역회사들이 외화를 벌어들이면 중앙에 전액 보냈으나 최근에는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 데 일정 부분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덜렁 생산만 해 놓는 방식에서 탈피해 구입자의 수요에 맞추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주문제 생산'도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북한 전자공업성 산하 전자제품개발회사와 중국 난징(南京) 팬더전자집단유한회사가 지난해 9월 합작 설립한 '아침-panda컴퓨터합영회사'가 대표적 사례다.

한달에 1만대 정도의 컴퓨터 생산 능력을 갖춘 이 회사는 주로 기관들의 선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방식으로 컴퓨터를 판매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당연한 일들이 북한에서는 이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원자재 부족은 북핵 문제로 대외 교류가 줄어든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홍익표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살릴 기업은 집중투자를 하고 돈이 안 되는 공장은 아예 문을 닫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우선 북한 당국이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금융.세무.무역 등과 관련된 추가 개혁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창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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