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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평가단이 간다] 한국 처음 찾아온 안데르센…자신이 쓴 동화와 닮았네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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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눈의 여왕』 등 여러분이 그동안 한 번쯤은 읽어 봤을 동화를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글솜씨에 재능을 발휘해 세계 최고의 동화 작가로 성공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동화’라 불렀던 안데르센의 모든 것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소중 체험평가단이 전시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안데르센 이야기

지난 1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데르센 이야기’ 전시에 소중 체험평가단이 나타났습니다. 안데르센이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의 독특한 성격과 재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들도 그랬습니다.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오덴세시립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덴마크 오덴세시의 안데르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유품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공개되는 전시물들입니다. 입구에서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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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이야기
기간
2016년 2월 21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기획 전시실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8시, 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문의 02-724-0274

전시장은 안데르센의 생애와 그의 작품 세계를 알려주는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입구에는 안데르센의 전신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185㎝의 키를 가진 안데르센의 실물 사진이죠. 지금도 큰 키지만, 200년 전에는 더욱 크게 느껴졌을 듯합니다. 옆에 가서 나란히 서보니 학생기자와 머리 2~3개 이상 차이가 납니다. 꼬불꼬불한 머리와 길쭉한 코,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표정이 참 정겹습니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자 안데르센의 고향 덴마크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펼쳐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의 북쪽에 자리한 덴마크는 숲이 우거지고 땅이 비옥한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1000년 전 이곳에는 교역과 정복을 목표로 한 거대한 배를 끌고 다니던 무시무시한 바이킹족이 살기도 했죠. 안데르센은 오래된 왕국인 덴마크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오덴세에서 1805년에 태어났습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말랑말랑한 동화를 만들어 낸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었던 그는 무척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난 집 사진도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단조로운 지붕에 허름한 흰색 벽이 부자와는 거리가 먼 느낌을 줍니다. 소년 안데르센은 가난 때문에 화려한 미래를 꿈꿀 수 없었지만, 혼자 공상에 빠져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 종일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이웃에게 빌린 책을 읽고, 시와 연극 대본을 썼다는 기록이 있네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오덴세의 문화 역시 훗날 안데르센을 동화 작가로 키워낸 원동력이었습니다. 오덴세 사람들은 모든 환경의 변화가 저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에 혜성이 나타난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여겼고, 강에는 사람을 잡아가는 인어가 산다고 믿었어요. 강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종이 있어, 이 종이 울리면 도시의 누군가가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이런 이야기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훗날 어른이 돼 “어린 시절 강가에서 노래를 부르면 강 속에서 왕자가 올라와 나를 데려가 부자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매일 밤 이런 상상을 했는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린 안데르센에게 상상의 세계는 현실 고난의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합니다.

[안데르센이 만든 종이인형의 모습들이 벽면 가득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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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동화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벽면을 따라 계속 이어집니다. 11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불행을 겪고 14세 때 고향 오덴세를 떠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갔습니다. 왕립 극단의 단원으로 입단했지만 너무 큰 키와 깡마른 몸매, 갈라지는 목소리 때문에 3년 후 해고됐어요. 그 후 극단을 위해 극본을 썼는데, 그의 글재주를 눈여겨본 왕립극단 운영진은 ‘솜씨는 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아 교육적 기초가 부족하다’고 판단,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결국 그는 24살이 되던 해 첫 동화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썼지만 학교를 다니던 내내 학교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교장은 그에게 모든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나쁜 말을 내뱉었습니다. 안데르센은 덴마크 평균 키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더 컸고 얼굴이 못생겨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죠. 움푹 파인 눈과 커다란 코가 두드러진 얼굴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황새·낙타·오랑우탄이라 비아냥댔습니다. 늙어 보이는데다 못생기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얼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죠. 전시장 한쪽에 놓인 안데르센의 낡아빠진 여행가방은 젊은 시절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자주 여행을 다니며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낸 탓에 가방의 가죽 줄이 늘어져 코끼리 귀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1843년, 그 유명한 『미운 오리 새끼』가 탄생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을 이겨내고 백조가 된 동화 속 내용은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과도 닮았습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대신 내면의 자질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동화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안데르센의 동화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도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변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고, 국가에서 특별 연금까지 주는 등 유명인사로 거듭났습니다. 동화가 유치하지 않은데다 어른이 읽어도 이야기에 빠져들 만큼 울림을 주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입니다.

전시장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자 그의 동화로 꾸며진 전시물들이 펼쳐졌습니다. 『눈의 여왕』의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져 걸려 있었고, 『미운 오리 새끼』의 삽화들도 보입니다.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진 『인어공주』 이야기도 감상할 수 있죠. 덴마크 영화 제작자인 모텐 바톨디가 제작한 애니메이션도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동화 속 인물들을 평면의 종이로 오려낸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안데르센이 직접 만든 종이작품입니다. 그는 동화를 만들면서 동시에 종이를 오려 만든 작품을 주변에 알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종이를 자르면서 끊임없이 동화 이야기를 했고, 이야기가 끝날 때 마지막 장면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종이를 펼쳐 보였다고 합니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은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자신만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갖는 것이 전통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특히 안데르센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매우 좋아했고, 직접 만든 종이인형과 짧은 시가 적힌 종이를 트리에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 『전나무』와 같은 작품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이 놓인 트리 옆에 앉아 주변 사람들에게 동화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시대를 초월해 지금까지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안데르센을 떠올리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데르센 이야기 전시장은 그의 동화들이 만들어낸 훈훈함으로 가득합니다.

[전시장에는 안데르센이 만든 종이인형들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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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들의 체험 후기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한 작가

박주영(서울 목동초 5) | 낡아빠진 자신의 여행가방에 ‘코끼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을 전시를 통해 처음 알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못생겼다는 놀림을 받은 기억으로 『미운 오리 새끼』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긴 것도 대단하다 생각된다. 아마 같은 경험을 가진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진짜 가족은 없었지만,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라 말한 것을 보면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 아닐까 한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김민재(고양 서정초 6) | 안데르센의 종이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종이인형을 만들 때 큰 가위만 썼다고 한다. 큰 키의 남자가 커다란 가위를 들고 그토록 섬세한 인형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또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도 가슴을 찡하게 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를 쓰며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다는 점이 참 멋있다고 생각된다. 힘든 시기를 거치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동행취재=김민재(고양 서정초 6)·박주영(서울 목동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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