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의 ‘한 수’ 충격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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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ed 의장

시나리오대로였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제로금리 시대를 끝내는 화살을 쏘아 올렸다. 항로가 급격히 변할까 우려하 던 시장은 오히려 반색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함성이 컸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현재의 0~0.25%에서 0.25~0.5%로 0.25%포인트 올린다고 발표했다. 2008년 12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제로금리를 채택한 지 7년 만이다.

[뉴스분석]
미 기준금리 0.25%P 올려
7년 만에 제로금리 막 내려
불확실성 해소, 시장은 반색
한국엔 금리인상 압박 커져

 옐런 의장은 “향후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발언으로 먹구름이 걷히면서 세계 각국의 주가가 올랐다. 미국 다우지수는 16일 1.28% 올랐고, 뒤이어 열린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주요 증시도 상승세로 장을 마감했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앤 옐런에 대해 미국 시사지 뉴요커는 “재닛 옐런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신흥국 입장에서는 마음 놓을 상황만은 아니다. ‘점진적 인상’ 약속은 진통제일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신흥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표적인 게 1994년이다. 그해 Fed가 7차례 인상(3.0→6.0%)해 멕시코 페소화 위기와 97년 한국의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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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 한국에 Fed의 금리 인상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한국도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Fed 간부들의 내년 말 기준금리 예상치(중간값)는 1.4%다. 미국이 내년에 금리를 1%포인트 정도 더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현 기준금리(1.5%)와 차이가 없어진다. 외국 자본에 한국 시장은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내년 어느 시점에 금리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미국 금리 인상의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지만 장담할 수 없다. 12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에 눌려 있는 국민에게 금리를 올리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릴지 알리고 대비토록 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통화전쟁은 불가피해졌다.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지면 각국 통화의 평가절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중국이 깃발을 들었다. 위안화 가치는 4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국 수출 기업들은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를 각오해야 한다. 정부의 환율정책 운용은 통화전쟁에 대한 위기의식 위에서 펼쳐져야 한다.

이제 세계 경제는 ‘대균열 시대’로 진입했다. 미국을 필두로 한 금리 인상 진영과 유럽·중국·일본의 금리인하 진영으로 갈렸다. 신흥국들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경기가 채 회복되기 전에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 고꾸라질 것이고, 경기를 살리려 금리를 내리면 외자 이탈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 당분간 자원부국들은 과거처럼 상품을 사주는 왕성한 구매자 역할을 하기 어렵다. 시장은 축소되고, 리스크는 커졌다. 각국은 생존을 도모하는 한판 승부를 각오해야 한다.

한국은 이런 살얼음판에서 구조개혁 같은 근본적 해법을 도모해야 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옐런 의장이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조정하겠다고 한 만큼 이 기간에 단기 부양책보다는 구조개혁·규제개혁을 통해 체질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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