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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성탄절을 함께 보내면 연인 관계가 끝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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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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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고리토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성탄절이나 연말연시에 연인과 함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한국에선 ‘연애 시작’이나 ‘연애 중’을 뜻한다. 하지만 브라질에선 ‘연애의 끝’을 의미한다. ‘성탄절을 함께 보낸 연인은 헤어진다’라는 무시무시한 징크스나 저주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연애의 끝이란 바로 ‘결혼의 시작’을 뜻한다. 브라질은 성탄절이나 1월 1일을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런 자리에 연인과 동행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그만큼 진지한 사이이며 결혼이 머지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성탄절에 모인 가족들 앞에서 약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브라질에선 성탄절을 함께하면 가족끼리 교환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모두 알게 된다. 받는 즉시 포장을 뜯어 모두에게 공개하고 선물한 사람에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할인 판매하는 옷을 받은 여자친구가 내가 조카들에겐 비싼 장난감을 선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다음 벌어질 일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브라질 사람은 성탄절을 앞두고 고민에 빠진다. 여자친구가 집에 데려가도 될 만큼 진지한 사이인지, 혹시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을지, 부모님 반응은 어떨지, 선물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다른 가족들의 선물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지 등등 신경 쓸 게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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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선 이런 걱정을 별로 하지 않고 당연히 연인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성탄절이면 으레 브라질에 가서 가족과 연휴를 보내는 편이다. 그런데 성탄 휴가를 가족과 보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랬나 봐요”라고 말해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다. 가끔 사정이 생겨 브라질에 갈 수 없게 되면 한국에서 친구들과 연휴를 즐긴다.

 그러면서 깨달은 점은 ‘누구와’ 연말 행사를 함께 보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연인·친구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연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JTBC ‘비정상회담’ 촬영 스케줄 때문에 성탄절 연휴를 브라질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게 됐다. 대신 한국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작은 파티를 열어 볼 생각이다.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지난 한 해 동안의 추억을 나누고, 새로운 한 해의 꿈과 목표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카를로스 고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