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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글로벌] 외로운 늑대와 양치기 소년…우리의 테러 대응 자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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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모스크바 프랑스 대사관 앞 파리 테러 추모 촛불. [중앙포토]

테러와의 싸움은 ‘공포’와의 싸움이다. 진짜 적은 무장한 이슬람국가(IS)의 전투원도 도시 내부까지 침투한 ‘외로운 늑대’도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공포’다. 유럽의 이민자 공포와 국경 장벽 설치도, 각종 선거에서 우파의 약진도, 미국 공화당 대선 레이스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기이한 독주도 그 뿌리에는 ‘공포’가 존재한다. 지난 1월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앱도 테러나 11월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국민들이 “우리에게는 샴페인이 있다”며 일상적인 삶을 강조한 것도 공포에 맞서기 위해서는 총칼이 아니라 평정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평정심이 흔들리고 있다. 공포가 커질 때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이 되곤 한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교외 유치원 교사의 거짓말이 대표적이다. 이 교사는 “IS 추종자에게 흉기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밝혀졌다. 이 남성은 목과 옆구리를 자해해 가며 거짓말을 했다.

15일에선 미국에서 폭발물 위협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소재 공립학교에 대한 공격 협박 e메일로 공립학교 900곳과 대안학교 187곳 등 1000 곳 이상이 휴교했다. 64만명의 학생들이 IS를 떠올리며 집에 머물러야 했다. 뉴욕시 교육위원에게도 테러 협박 e메일이 도착했지만 뉴욕시는 장난이라는 판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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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런던 동부 레이턴스톤 지하철 흉기난동 사건 현장. [중앙포토]

영국에서는 지난 3일 런던 동부 레이턴스톤 지하철 흉기 난동이 발생했는데 런던 경찰은 즉각 이를 테러로 간주했다. 외신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는 거짓 테러 신고가 늘어나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허위 또는 거짓 신고가) 두려움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허위 신고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서구권만 테러 공포가 높아진 건 아니다. 자국민 2명이 IS에 납치돼 살해된 일본에서는 6일 도쿄 애플스토어의 폭파 협박으로 행사가 취소됐다. 한국에선 지난달 21일 서울 지하철 이수역에서 “이슬람 사람이 AK소총 들고 들어간다”는 허위 신고가 접수돼 군 부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발생하는 등 테러 관련 허위 신고가 급증했다.

IS는 파리 테러 직후 트위터로 런던·워싱턴DC·로마를 다음 타깃으로 공표했다. 지난달 공개한 IS의 테러 협박 영상에는 미국·캐나다·프랑스·일본·한국 등 60여개국의 국기가 포함돼 있다. IS와의 전투에 참여했건 하지 않았건 이들 국가에선 ‘공포’라는 씨앗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이 씨앗은 정확히 IS가 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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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공개한 테러 협박 영상에 등장한 세계 각국 국기들. 한국도 포함돼 있다. [유튜브 캡처]

공포가 수많은 양치기 소년과 거짓말을 낳고, 불안감이 이슬람교도를 향하게 하는 것. 그리고 차별 받고 박해 받은 이슬람 교도들이 다시금 IS에 가담해 '외로운 늑대' 같은 전투원이 되게 만드는 것이 IS의 전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IS의 목표는 서방이 무슬림을 탄압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수만 명이 잠재적인 IS 충원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적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고,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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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샤프자이 [AP=뉴시스]

18살에 불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샤프자이의 말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다. 그는 15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탈레반 희생 어린이 추모행사 자리에서 “테러를 멈추려면 무슬림 전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며 “그건 오히려 테러리스트를 더 과격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대서양 건너편 트럼프를 향해 ”당신이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말할수록 더 많은 테러리스트만 생겨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은 세계 2차대전 종전 70주년인 2015년 올해의 한자로 편안할 안(安)자를 선정했다. 테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글자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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