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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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비키 매켄지 지음, 세등 옮김/김영사, 9천9백원

잘 짜인 전기물이다. 사람의 냄새가 진득하게 풍긴다. 문장도 술술 넘어간다. 덕분에 한 인간의 궤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종적으로 선물하는 감동도 만만찮다.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제목에 책의 모든 게 담겨 있다. 여성과 부처(붓다)란 키워드가 책을 관통한다. 하지만 목소리는 낮다. 페미니즘을 소리쳐 옹호하지도, 부처의 설법을 힘주어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설득력은 커진다.

주인공은 서양 여성 최초로 티벳 승려가 된 텐진 빠모다. 1943년 런던의 생선 가게 딸로 태어나 지금은 지구촌 곳곳에서 불법(佛法)을 전파하고 있다. 그의 과거를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단 호기심은 서양과 여성이란 두 단어에 집중된다. 그가 불교에 다가서려는 목적 하나에서 고향 런던을 떠나 인도로 발길을 돌릴 때의 나이는 스무살. 삶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던 벽안(碧眼)의 아가씨가 불성(佛性)을 체득해가는 과정이 촘촘하게 펼쳐진다.

당시만 해도 티벳 불교는 서양에서 거의 미신으로 취급됐다. 그를 불교에 인도한 게, 그래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게 '흔들림 없는 마음'이란 불교서 한 권이라는 점에서 새삼 '책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12년 간의 설산(雪山) 동굴 수행이다.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가운데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그의 고단한 행보가 큰 울림을 준다.

그는 벽장 하나 크기의 좁은 공간에서 '여성은 은거 수행을 할 수 없다'는 편견에 맞서 자신을 단련해간다. 물론 수행은 고통 자체였다. 혹독한 추위와 육체적 질병을 이겨내며 더 높은 영적인 경지에 오르려는 외로운 '싸움'이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큰 매력은 인간적 접근이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성인의 경지가 아닌 우리와 별 다를 게 없는 한 개인의 나약한 모습이 노출된다. 특히 인도 생활 초기, 세 남자로부터 동시에 결혼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잠시 갈등하는 대목에선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영국 언론에 꾸준히 글을 써온 저자의 꼼꼼한 취재와 불교 내 여성 문제에 관심이 큰 세등 스님의 편안한 번역이 잘 만난 것 같다.

특정 종교나 지역, 혹은 남녀의 차별을 넘어서 구도하는 인간의 본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밖의 다른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는 텐진 빠모의 말이 실감나게 전달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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