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아버지식 당근 대신 채찍 들고 “충성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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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12년 11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사진 오른쪽)과 기마중대에서 말을 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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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12월 17일 사망)과 확연히 구분된다.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환경도 변했지만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견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권좌에 오른 젊은 김정은의 우선 과제는 흔들리지 않는 백두혈통 권력의 유지였다. 전문가들은 지난 4년간 ‘김정은식 인사 스타일’을 크게 세 가지로 특징 짓는다. ▶영원한 2인자 불허와 잦은 숙청·인사 ▶코드 인사를 통한 전격 발탁 ▶가족마저 처형하는 비정함이다. 모두 공포통치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들이다.

고위직 인사이동 왜 잦았나
김정일, 실세 병 걸려 일 못해도 중용
김정은 ‘믿을 만한 사람 찾기’ 최우선
영원한 2인자 안 두며 가족·측근 처형
잦은 인사로 불만·복지부동 부작용
집권초 38% 올핸 19% 교체율 줄어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4년 동안 특별한 인사를 하지 않았다.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를 열어 정무원을 내각으로 교체하면서부터 대대적인 인사를 했다. 20여 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김정일은 권부 핵심에 이미 자기 사람이 있어 연착륙이 가능했다. 하지만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체제 들어 숙청당한 당·군·내각의 간부는 100여 명에 달한다. 4년간 연평균 20~30명에 달했다는 얘기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김정은 시대 들어 숙청이 일상화됐다”며 “병에 걸려 업무를 못하더라도 사망할 때까지 직책을 유지시키는 등의 당근으로 충성심을 유도했던 김일성·김정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또 “잦은 숙청으로 과거 주택과 먹거리 등에서 최상의 지원을 받고 생활했던 북한 고위 간부들의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다만 집권 첫해인 2012년의 경우 군부를 제외한 94개 직책 중 38%를 바꾼 반면 올 들어 18.9%로 교체율이 줄었다.

 김정은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인 전격 발탁은 자기 사람 찾기의 일환이다. 현지지도를 하다 눈에 띄는 인물을 곧바로 중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됐고 물갈이가 됐다.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이 경우에 속한다. 조용원은 2012년 4월 북한 언론에 처음 등장한 이후 최측근으로 급부상했다.

 국민대 정창현(북한학과) 겸임교수는 “김정은이 할아버지나 아버지 시대의 인사들과 함께 일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잦은 인사를 통한 세대교체와 충성 경쟁을 유도해 권력을 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자는 김정은의 발탁 인사에 대해 “권력 기반이 공고했던 김정일마저도 80년대 말 ‘수령님(김일성)께 충성하는 게 나(김정일)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유동적인 상황에서 김정은으로선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젊은 피 수혈을 위한 ‘간부사업(인사)’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체제 유지를 위해 친·인척에게도 무자비했다. 권력 승계 후 고모(김경희 당 비서)와 고모부(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에게 의지했지만 2년 만에 태도를 바꿨다. 장성택을 위협 세력으로 보고 처형했다. 김경희의 대외 활동도 중지시켰다.

 점차 자신감이 붙은 김정은이 핵심 간부들의 직언에 대해 인색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나, 지방에서 혁명화 과정(노동을 하며 반성하는 벌칙)을 거쳤던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이 처벌받은 것도 직언을 하다가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국가안전보위부장(김원홍)이나 호위사령관(윤정린)·보위국장(조경철)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간부사업 총책임자인 당 간부담당 비서(김평해)도 인사의 칼날을 피했다. 김정은의 신변 보호와 체제 유지를 책임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세대 김용호(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는 고위급 간부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통해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정책(co-optation)을 펴곤 한다”며 “하지만 이런 물질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잦은 인사는 불만을 증폭시킬 수 있다. 권력 안정화 수단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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