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차라리 ‘솔직 정당’은 어떨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기사 이미지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150석의 벨기에 하원에는 현재 12개의 정당이 의석을 갖고 있다. 정당별 의원 수는 많게는 33, 적게는 1이다. 지방의회는 총 19개 정당이 의석을 분점하고 있다. 공식 등록된 전국 정당은 30여 개다. 이 나라 국토 면적은 한국의 약 3분의 1, 인구는 1000만 명 안팎이다.

 지난해에 출범한 벨기에 연방정부는 4개의 당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3개는 플레미시(네덜란드어권) 정당이고 나머지 1개는 왈로니아(프랑스어권) 정당이다. 하원 최다석 정당인 ‘새 플레미시 연대’가 중도우파 연립정부를 만들기 위해 20석의 왈로니아 자유당을 끌어들였다. 왈로니아 자유당은 연대의 대가로 총리 자리를 얻었다. 벨기에 연립정부에 네댓 개 정당이 참여하는 것은 보통 일이다. 8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한 적도 있다.

 이 나라 각 정당의 성향을 알려면 우선 세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한다. 가톨릭계냐 아니냐, 플레미시·왈로니아 중 어디인가, 보수·진보에서 어느 쪽인가다. 예컨대 ‘플레미시 기독민주당’은 가톨릭계의 플레미시 지역 보수 정당이고, ‘왈로니아 사회당’은 비가톨릭 왈로니아계 진보 정당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게다가 플레미시·왈로니아 구분에 반대하는 통합적 정당들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복잡한 벨기에 정치 지형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의 역사와 크게 2개의 언어권으로 갈라져 있는 지리적 특성의 산물이다. 그 결과 부자연스러운 통합보다 각양각색의 이해관계와 이념을 정당 구성에 그대로 반영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복잡하게 살지 말고 이제는 플레미시와 왈로니아가 각각의 나라로 갈라서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총선 뒤에 1년 반 동안 내각을 꾸리지 못해 과도체제로 정부를 지탱하기도 했지만 이 나라는 절충과 타협으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며 선진국의 면모를 지키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의 1.8배다.

 요즘 한국 정치판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양당 체제인데 그 속에 많은 당이 귤 알맹이처럼 들어 있다. 친노 운동권 연대당, 비노 호남당, 생계형 비노 비호남당, 원조 친박당, 친박 TK당, 비박 자유당, 중부 이익당 등 다양하다. 보수냐 진보냐로 이들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정치적 비전도 알기 힘들다. 권세 유지·확장의 유불리가 결속의 동력일 뿐이다. 이쯤 됐으면 새정치·새누리 같은 위장 장막을 젖히고 나와 진솔한 간판을 내거는 이들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