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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저자, 파워블로거 채용 … ‘스펙 태클’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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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4년 전 서울 소재 대학교 정보사회학과를 졸업한 김희성(31)씨는 입사 시험에서 수 차례 고배를 마셨다. 학점 평균이 3점대 초반에 토익이 800점대, 자격증은 문서편집 관련이 전부였던 스펙 탓이라 생각했다. 올 봄, 그는 ‘SK 바이킹 챌린지 오디션’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대학·학점·영어성적 대신 오직 자신이 내세우고 싶은 내용만을 자기소개서에 써 넣어 서류심사에 합격해 15분 동안 프레젠테이션(PT) 할 기회를 얻었다. 김씨는 고교 시절 서울시장을 포함, 유명인 50여 명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했고, 이를 책으로 출간한 경험을 ‘적극 도전하는 의지’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얼마 후 그에게 합격통지서가 날아왔고, 2개월 간의 인턴과정을 마치고 SK텔레콤 정규사원이 됐다.

학점·토익 안 따지는 전형 늘려
삼성, 인문학도에 SW 교육 후 채용
현대차, 인성평가만 하고 입사 기회
LG 해외탐방 참여자, KT 달인 선발

 지난 3월 이마트에 입사한 정선일(27)씨 역시 ‘서류 전형→필기→면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정씨는 지난해 4~6월 신세계그룹 주최로 전국 대학에서 진행된 지식향연 경연에서 20명의 청년영웅단에 최종 합격돼 옛 로마제국을 아우르는 이탈리아∼남프랑스 그랜드투어에 참가했다. 그는 “이후 진행된 직무오디션면접에서 다양한 상품 및 방문 후기를 담은 개인 블로그의 방문객이 100만 명이 넘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린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면접관들에게 그의 학교·학점·영어성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기업 사이에서 일반 대졸 신입사원 채용과는 별도로 스펙을 보지 않는 ‘스펙타파’ 채용전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재계 자산순위 1∼5위인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현대중공업·한화·KT·신세계·CJ 역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3년부터 인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SCSA’(삼성컨버젼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는 6개월간 채용내정자 신분으로 삼성전자·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관련 교육을 받은 후 해당 기업에 입사하게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3년부터 ‘더에이치(The H)’ 전형을 운영 중이다. 인사담당자가 직접 대학교 등지에 방문해 입사대상자를 캐스팅하고, 3개월간 인성 중심 평가를 진행한 후 최종합격하면 그룹 계열사에 입사하게 된다. 인성 평가 과정에서 학교·학점·어학성적 같은 스펙은 배제된다.

 LG그룹은 1995년부터 ‘LG글로벌챌린저’(대학생 해외 탐방 프로그램)를 운영하며 우수 입상자에게 인턴 또는 정규직 입사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참가자는 자유 주제로 해외탐방을 다녀와서 보고서를 제출하고, PT대회에 참가해야 한다.

 KT는 2012년부터 ‘달인채용’ 전형을 통해 분야별 전문가를 선발하고 있다. 마케팅·영업관리 같은 직무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거나 우수한 역량을 지닌 사람을 스펙에 관련 없이 뽑는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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