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안대희의 정치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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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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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안대희 전 대법관의 총선 출마에 대한 제3자들의 생각은 상반된다.

총선 출마는 대권 수순으로 해석돼
꽃가마에서 내려 황무지로 들어가야

 긍정적 시각은 한때 ‘국민 검사’로 불리기까지 했던 검증된 법률가의 정치권 진출을 반기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게서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국회에 들어가 개혁 입법을 통해 부정부패를 없애 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그도 최근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 되면 검찰·경찰·국세청·금감원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란다. “감히 개혁을 할 줄 안다고 자부한다”고도 했다.

 반면 안대희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거나 근무 경험을 가진 사람 중엔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도 제법 있다. 그의 이력을 근거로 ‘공적 권력의 사유화’ 측면을 슬그머니 흘린다. 특수부 검사-대검 중수과장-특수부장-대검 중수부장-고검장-대법관 등 화려한 경력의 이면에는 선후배, 동료들의 지원과 희생도 있었다는 논리다. 검찰과 법원을 넘나들며 좋은 보직을 경험하고, 이제 정치 권력까지 좇는 것에 대한 부정적 견해다.

 법원은 드러내놓고 의견 표시를 하지 않지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법관까지 지낸 거물 법조인이 초선 의원에 도전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다. 판사 출신인 이회창 전 대법관이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정계에 들어간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안대희를 애써 검찰 출신으로 분류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현직을 떠난 법조인의 총선 출마가 이처럼 관심을 받은 적은 드물다.

 20년 전 김도언 전 검찰총장이 퇴임 4일 만에 여당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하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일었던 적이 있었다. 정치적 논란은 물론 품격과 처세를 둘러싼 뒷말이 나왔다.

 안대희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2012년 대법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지 이미 3년 이상이 됐다. 하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로 임명됐다가 낙마한 것이 비판론의 연결 고리다. 전관예우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 명예 회복을 외치며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안대희 본인도 이 같은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자존심 강한 그가 대중 앞에서 허리를 90도 가까이 꺾으면서까지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안대희를 지켜봤던 많은 법조인과 언론인들은 그의 총선 출마를 대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다. 나 또한 그가 국회의원직에 만족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된장 맛을 보겠다고 꼭 찍어 먹어 봐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童顔)인 그에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저돌적인 추진력이 있다. 집념도 만만치 않다. 그가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으면서 지휘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정치권과 재계의 엄청난 저항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캐릭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가 두 발을 딛고 서야 할 토양은 황무지나 마찬가지다. 검찰이나 법원 같은 온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또한 자신을 지지했거나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국민이 바라는 것은 큰 칼을 휘두르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신선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법조인이 개혁을 얘기하며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부나방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법률가들의 한계라고 할까. 남들이 태워주는 ‘꽃가마’에는 익숙했지만 낮은 대로 임하는 것에는 어설펐던 것이다. 그가 총선 출마 희망지로 부산 해운대구를 지목한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이런 탓일 것이다.

 안대희의 골프 실력은 보기 플레이 정도다. 하지만 두둑한 배짱이 보통이 아니어서 고수들에게도 곧잘 ‘배(倍)판’을 외친다. 그가 정치판에서도 ‘배판’을 부른다고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괜찮은 스토리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텐데….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