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서 문 닫은 학교 300곳 중 90%에 이승복 조형물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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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정 풍경은 시대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하기 마련이다. 당대의 국가 이념은 물론 사회·경제·문화적 현실이 때로는 양각으로, 때로는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공간이 바로 초등학교 교정이다.

전주 서일초등학교 서영주 교사
10년간 호남 답사, 폐교 사진전
『흑산』 쓰던 김훈에게 자료 제공

 충남대 최광만(교육학과) 교수는 “그런 상황은 특정 시대, 특정 정권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고 했다. 가령 일제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 천황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권력의 입장에서는 국가 이념이나 특정 정치 이념이 국민들 사이에 재생산되도록 하는 데 초등학교만 한 공간이 없다는 해석이다.

 요즘 전국의 버려진 폐초등학교에 이승복 조형물이 천편일률적으로 들어서 있는 것도 당연히 그런 이유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은 2011년 출간한 장편소설 ?흑산?의 자료수집차 흑산도에 들어갔다가 그 안의 한 폐교에서 쓰러져 방치된 이승복 조형물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승복 조형물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수소문하다 만난 사람이 전주 서일초등학교 서영주(사진) 교사다. 전북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교사로 임용된 서씨는 농어촌 지역 작은 학교로 전근다니다 폐교가 느는 현실을 접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버려진 이승복 조형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전남북 지역의 폐초등학교를 대부분 답사한 결과 이승복 조형물은 대개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세워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10년가량의 기간은 반공 교육을 강조한 3차 교육과정(1973∼81)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던 시기다. 서씨는 특히 “전북 지역의 경우 300개가량의 폐초등학교 가운데 90% 이상의 학교에 이승복 조형물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당시 초등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특정일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십시일반 이승복 조형물 제작비를 모으거나 타지로 나가 출세한 사람들이 제작비를 대는 경우가 많아서다. 서씨는 각종 조각상이 나뒹구는 폐교 사진들을 모아 2011년 서울 인사동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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