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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명의가 오히려 당신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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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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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이매뉴얼
미 펜실베이니아 의대 부학장

의사인 내게 친구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올 때가 있다.

 “어머니가 집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셨어. 근처 ○○병원으로 가고 있어. 그 병원에서 제일 실력 좋은 전문의 좀 추천해줘.” 안타깝게도 이는 잘못된 요구다. 놀랍겠지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정반대다. “유명한 심장전문의가 ‘없는’ 병원은 어디야?”다.

 

심장전문의 없는 병원 사망률 급감
노인들, 먹어 온 약 끊자 건강 회복
치료는 혜택과 부작용 알고 응해야
환자들 회복에는 대학병원이 유리

최근 미국 내과학 저널에는 경악할 만한 내용의 논문이 게재됐다. 지난 10년간 입원 환자 수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 심장질환에 걸린 환자는 유명한 심장전문의가 병원에 없을 때 상태가 호전됐다는 것이다. 미국 최고의 대학병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장전문의들이 학회 참석이나 휴가 등의 이유로 병원을 떠나 있을 때 심장병 환자들의 사망률이 현저히 낮게 나타났다. 일부 환자들의 사망률은 무려 3분의 1이나 감소했다. 미국 최고의 심장전문의들이 없어야 심장마비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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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에 반하는 이런 연구 결과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학자들이 검증에 들어갔다. 그 결과 우선 심장전문의가 아닌 일반 외과의들이 학회 참석차 병원을 떠났을 경우 입원 중인 심장병 환자들의 사망률은 변하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학회에 참석한 외과 의사들이 심장병 환자를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또 심장전문의들이 학회 참석차 병원에 없었을 때 고관절 골절 등 심장과 관련되지 않은 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의 사망률에도 변화가 없었다. 이와 함께 대학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몸 상태가 지역 일반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그것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심장전문의의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사망률이 증가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원로급 심장전문의들은 훌륭한 연구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직접 환자를 다루는 건 갓 수련을 마친 신참 외과의들이 더 나을 수 있다. 원로급 전문의가 더 많은 외과적 치료를 시도한다는 데이터도 있다. 이 또한 그들이 다룬 환자들의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일 수 있다. 일례로 심장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전문의가 맡을 경우 몸에 칼을 대 심장혈관을 여는 등 외과적 치료를 시도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의사의 치료를 많이 받을수록 상태가 악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이스라엘 의학계는 질환을 여럿 앓고 있는 노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이들은 평균 7개 이상의 약을 먹고 있었다.

 이들에게 약 복용을 중단케 하고 경과를 관찰했다. 환자들은 최소한 5개의 약을 끊었다. 이후 다시 약을 복용할 필요가 생긴 환자는 2%밖에 되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은 탓에 숨졌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겪은 환자는 없었고, 거의 모든 환자의 건강이 좋아졌다. 약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을 아끼게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 모두는 치료를 많이 받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병원에서 하는 치료나 검진의 상당수는 부작용을 낳거나 또 다른 잘못된 치료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인후염 같은 단순 질환을 항생제로 낫게 하려다가 더 큰 질환을 불러들인 경험에서 의료계가 얻은 교훈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막상 환자를 다루게 되면 치료를 자제하기 힘들다. 피검사·영상 촬영을 시도하거나 투약·수술을 하는 것이 쉽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환자를 돌려보내기란 의사들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의료 당국은 정책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시술에 들어가기 앞서 환자에게 치료의 성공률이나 합병증 가능성 같은 정보를 알려주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특히 노년층 환자들의 약물 과다 복용은 의사가 1년에 최소한 한 차례 이상 약물 복용을 중단하도록 유도하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환자도 할 일이 있다. 의사가 X선·유전자검사나 수술을 해보자고 제안하면 바로 응하지 말고 네 가지 질문부터 던져보라. 우선 “그런 치료를 하면 얼마나 차도를 볼 수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 둘째, “치료를 한 뒤 실질적 효과가 뭐냐”는 질문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치료의 결과 수명이 연장되는지, 심장발작 같은 위험이 줄어드는지 같은 물음을 던지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치료의 부작용 가능성은 얼마나 되느냐”다. 마지막은 “치료받을 장소가 대학병원이냐, 일반병원이냐”는 질문이다. 앞서 말했듯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병원에서 환자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

 이런 네 가지 질문을 던지면 의사들은 불편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의 위험과 혜택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줄 의무가 있다. 그러면 환자는 자신의 결정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되며 상태도 호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만약 어머니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면 최고로 유명한 심장전문의를 찾는 대신 위의 네 개 질문을 담당 의사에게 던져보자.

에제키엘 이매뉴얼 미 펜실베이니아 의대 부학장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 신디게이트 계약 뉴욕타임스 21일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