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36% 떨어졌는데 휘발유 값은 ‘쥐꼬리 인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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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시민단체 활동가 조선미(48)씨는 일 때문에 경기도 수원시와 의정부시를 운전해서 자주 오간다. 국제유가가 폭락했다는데 조씨는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 “한 번에 20L씩 셀프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고 2만8000원을 낸다”며 “지난해보다 한 2000~3000원가량 부담이 준 정도”라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지난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데 휘발유값이 적어도 2만원 아래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아해 했다.

1L당 평균 1448원 … 8% 하락
“정유사·주유소 더디게 내려” 불만
“세금이 60% 차지하기 때문” 반박

 ‘저유가의 저주’에 국내 산업계가 휘청거리고 있지만 석유제품 판매가가 떨어지는 반사 이익마저 국내 소비자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6개월 새 국제유가가 30% 넘게 폭락했다. 하지만 국내 기름값은 10%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두바이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38.5달러로 6개월 전 60.2달러와 비교해 36% 급락했다.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휘발유(옥탄가 92 기준) 국제 가격도 이 기간 배럴당 80.3달러에서 53.4달러로 33.5% 하락했다.

 그러나 오피넷에서 공개한 8일 국내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L당 1448.8원으로 여섯 달 전 1575.9원에 비해 8.1% 떨어지는데 그쳤다. 석유값이 떨어지면서 정제·유통 마진(이익)이 줄자 정유사와 주유소가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속도보다 더디게 국내 판매가를 인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국내 기름값의 약 60%가 세금이라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그대로 휘발유 가격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라며 “오히려 세금 때문에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높게 느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석유류(보통 휘발유 기준)를 판매할 땐 교통세가 L당 529원 붙는다. 금액과 상관없이 중량에 따라 매기는 세금이다. 교통세의 15%만큼 교육세가, 26%만큼 주행세도 따라붙는다. 부가가치세(판매가의 10%)까지 따지면 석유제품 가격 등락과 상관없이 고정적으로 800원대 세금이 얹어진다. 휘발유·경유 가격이 1000원대로 내려가면서 세금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기획재정부는 “유류세 인하는 없다”며 “국제유가 하락분을 정유사와 주유소에서 제대로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재현 기재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산유국이 아닌 국가로써 유가가 급등했을 때의 충격을 완화하는 측면에서 유류세에 대해선 종량세(금액이 아닌 물량에 따라 세금 부과)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종=조현숙·김민상 기자, 김기환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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