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접속! 해외 서점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기사 이미지

세상과 나 사이에 (Between the World and Me)
타-너하시 코츠 지음
스피겔 앤 그라우 (Spiegel & Grau)

지난해 겨울 뉴욕 스테튼아일랜드에서 만난 흑인 대니얼 스켈튼이 생각난다. 낱개 담배를 팔던 에릭 가너가 백인 경찰에게 목 졸려 숨진 현장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생명의 가치는 이 담배 몇 개비 밖에 안 된다”는 그의 절규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에릭 가너가 죽기 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브라운은 총을 들지도, 경찰에 저항하지도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흑인들은 더했다. 저자의 15살 난 아들도 그랬다. 책은 저널리스트인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아버지는 아들 역시 도로에서 경찰에 희생되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마이클 브라운을 죽인 백인 경찰이 무죄방면되는 것을 TV로 지켜보던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저자는 아들을 위로할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의 아버지가 들려준 말을 아들에게 그대로 했다. “이것이 너의 나라다. 이것이 너의 세계다. 어떻게든 여기서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역시 경찰의 총에 대학 친구를 잃었다. 친구는 성공한 흑인 중산층 가정의 아들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약 거래업자로 오인돼 경찰의 총을 맞았다. 경찰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책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아들에게 “너도 이제 이 나라의 경찰은 네 신체를 파괴할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알 거다”고 말한다. 선동이 아니다. 흑백 차별이 쉽게 해소되고, 정의가 금세 구현될 거라는 망상에 빠지지 말라는 얘기다. 저자는 아들이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자신을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미국의 사상 최초 흑인 대통령 배출은 많은 이들을 감격시켰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있다. 미국 사회의 부조리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뉴욕타임스의 ‘2015년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됐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