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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사춘기 아들을 둔 아버지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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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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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중년의 아버지인 그는 10대 아들이 불량한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할 때 정석대로 가르쳤다. “그런 친구들이 괴롭혀도 그냥 무시하고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괴롭힘이 계속되자 아들은 그 친구와 일대일로 싸우기로 결심했다. 결과가 뻔한 도전이었지만 아버지는 또 정석대로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격려했다. 아버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싸움 현장에 동행해 아들이 맞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쓰러진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고 집으로 데려와 상처를 씻어주며 그는 자문했다. 아이에게 세계의 위험과 불량해지는 법을 가르쳐야 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 연극학 교수 제리 로크우드의 글 내용이다.

 아들이 사춘기쯤 되면 부자 관계에서 힘의 판도가 변화한다. 그동안 복종적 위치에 있던 아들이 자기 삶의 결정권을 자기 손에 쥐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해야 하는 일은 아들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이다. 자기 삶의 결정권을 잡은 아들이 아버지의 가치관에 도전해 올 때는 아들의 도전을 버텨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들이 내면의 불안이나 공격적 욕동(欲動)을 아버지에게 투사할 때 그것을 감당해 주어야 한다. 아들의 서툰 시도가 실패해 좌절할 때는 그 절망감을 안아주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보복하거나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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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데이비드 홀브룩은 ?대상관계 이론과 현대문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의 정치적·사회적 위험은 성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성인들은 그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청소년의 무의식적 충동을 견뎌낼 만한 충분한 안정감이 없다.”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먼저 심리적으로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역할은 성장기 자녀가 고집하는 이상주의적 결정이나 현실 검증 없는 도전을 지지해주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졌던 영국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은 “청소년들이 지닌 가장 신명 나는 것들 중 하나는 그들의 이상주의다. 그들은 아직도 현실에 정착하지 않은 사람들이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이상주의적 행동을 지지해주고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를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새롭게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인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오래 갈등했다고 고백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모든 면에서 성숙한 아버지 역할을 해낸 셈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