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정일 비자금으로 도박·성형?” 김정은 이모, 탈북자 셋 한국서 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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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숙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이모가 국내에 살고 있는 탈북자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국적을 지니고 있는 고영숙씨가 장본인이다. 특히 고씨는 남편 이강씨를 통해 자신의 법적 대리인으로 강용석 변호사를 지정했다.

98년 미국 망명한 고영숙씨 부부
김정은 스위스 유학 때 뒷바라지
강용석 선임 … “방송 출연 보고 결정”

 강 변호사는 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제임스 리’라는 사람이 한 달여 전에 e메일을 보내와 ‘11월 30일에 소송 상담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며 “만나고 보니 고씨의 남편 이씨였다”고 말했다. 박남철·박건 등의 이름으로도 활동하는 이씨는 지난달 30일 강 변호사의 사무실로 찾아와 미국 여권 등을 보이며 소송을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고씨는 동행하지 않았으며, 이씨는 다음 날인 12월 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씨는 강 변호사에게 “미국에서 강 변호사가 나오는 방송을 다 봤다. 한국에는 달리 아는 변호사도 없고 해서 e메일을 보냈다”며 강 변호사를 선임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강 변호사는 2일 오후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장을 접수했다. 고씨 부부는 98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미국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명예훼손과 같은 민사소송은 소송 대리인이 있으면 당사자의 출석 없이도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 미국인이라도 불법행위 가해자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경우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고씨 부부가 소송을 제기한 탈북자 3명은 국가안전보위부 출신이거나 북한 전직 총리의 사위, 전직 외교관 등 국내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사들이다. 고씨 부부는 이들이 방송에서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고영숙 부부가 도박·성형을 했다 ▶고영희(고영숙씨의 언니)·고영숙의 아버지 고경택은 ‘후지산 혈통’으로 친일파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고영숙이 쫓아냈다고 주장한 게 허위사실 유포라며 소송을 냈다. 강 변호사는 고씨 부부가 청구한 배상금액이 한 명당 2000만원씩 모두 6000만원이라고 밝혔다.

 한때 고용숙으로도 알려진 고씨는 조카인 김정은 제1위원장이 96년부터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할 당시 약 2년간 뒷바라지도 했다. 언니 고영희씨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에 들어 아들 정철·정은과 딸 여정을 낳았다.

 고씨는 미국 망명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에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어서 두려웠다”고 망명 이유를 밝혔다. 고씨 부부가 관리하던 스위스은행의 김정일 비밀계좌 정보를 토대로 미국은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이 40억 달러라고 파악했으며, 뉴욕증권시장 등에 투자한 김정일의 자금을 동결시켰다고 한다.

 고씨의 망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언니 고영희씨다. 망명 사실을 뒤늦게 접한 고영희씨는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반드시 찾아내 (빚을) 갚아주겠다”고 격노했다고 한다. 1988~2001년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에서 “(고영숙 망명 후인) 2000년 12월 고영희는 고민이 많았던 듯 젓가락을 쥐지 못할 만큼 심한 뇌경색을 앓았다”고 적었다. 고영희씨는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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