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탈북자 고소한 北 김정은 이모 고영숙은 누구?…비운의 北 로열패밀리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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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996년부터 2001년 1월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했다. 유학 초기인 96년부터 약 2년간 뒷바라지를 했던 인물은 김 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여동생 고영숙(57)이다. 왜 2년만 뒷바라지를 했을까. 고영숙이 남편과 함께 미국에 98년 5월 망명했기 때문이다.

고영숙의 남편 박건(‘이강’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짐)은 지난달 30일 극비리에 서울을 찾아 강용석 변호사를 만났다. 국내 고위 탈북자 3명이 방송에 출연해 ^김정일의 비자금으로 고영숙 부부가 도박을 했다^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고영숙이 쫓아냈다^고영희의 아버지는 친일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허위사실 유포로 피해를 봤다며 1인당 1000만원씩 손해배상 민사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는 김정일의 눈에 들어 아들 정철·정은과 딸 여정을 낳았다. 그런 고영희의 여동생 고영숙은 김정일의 지시로 스위스 주재 북한 외교관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김정은의 유학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랬던 그가 망명을 택한 이유는 뭘까. 고영숙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어서 두려웠다”고 망명 동기를 말했다고 알려져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고위급 인사 등 복수 소식통이 중앙일보에 2013년 전한 바에 따르면 CIA는 고씨 부부를 상대로 김정일의 스위스 비자금 등 깊숙한 정보를 확보했다고 한다. 고씨 부부가 관리하던 스위스은행의 김정일 비밀계좌 관련 정보를 토대로 미국은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이 40억 달러라고 파악했으며, 뉴욕증권시장 등에 투자한 김정일의 자금을 동결시켰다고 한다.

고영숙 부부는 스위스 주재 미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고, 미국 측은 이들의 신분을 확인한 뒤 망명을 받아들였다. 당시 한국에도 관련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을 정도로 망명은 은밀히 진행됐다. 고영숙은 성형수술로 신분을 위장한 채 미국 정보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 중이다.

고영숙의 망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는 고영희다. 망명 사실을 뒤늦게 접한 고영희는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반드시 찾아내 꼭 (빚을) 갚아주겠다”고 격노했다고 한다. 1988~2001년까지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씨는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에서 “(98년 고영숙 망명 후인) 2000년 12월 고영희는 고민이 많았던 듯 젓가락을 쥐지 못할 만큼 심한 뇌경색을 앓았다”고 적었다. 고영희는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있다. 고영희 사후 친오빠 고동훈은 불안감에 서유럽으로 망명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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