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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년 된 소나무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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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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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오, 스고이네(대단하네)~.”

 한 일본인 관광객이 감탄을 연발하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다. 월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다. 몇 주 전 서점 한편에 길이 11.5m의 대형 테이블 두 개가 들어섰다. ‘5만 년 된 뉴질랜드 카우리 소나무로 만든’이 강조된 화제의 독서 테이블이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100여 명이 빽빽하게 둘러앉아 책을 읽는다. 누군가는 책을 여러 권 쌓아놓고 한가롭게 넘겨보고, 누구는 시험공부를 하는지 노트를 펼쳐놓았다. 서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 외국인이 카메라를 꺼낼 만하다.

 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는 테이블은 테두리가 울퉁불퉁하다. 갈라진 부분은 그대로 갈라져 있고, 틈 사이로는 나이테가 보인다. 뉴질랜드 북섬의 카우리숲에서 자란다는 카우리 소나무는 수천 년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란다고 한다. 독서 테이블로 변신해 서울로 이송된 이 나무는 5만 년 전 자연재해로 쓰러져 늪지대에 묻혀 있었고, 그래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무를 사고, 가공하고 옮기는 데 4억원이 넘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서점에 물었다. “꼭 그렇게 비싸고 귀한 나무를 써야만 하나요?” “긴 시간을 버텨 온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서 오랜 역사를 살아남은 지혜가 담긴 책을 읽는다는 특별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삐죽 나온 테이블 모서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니 그런 것도 같다.

 서점 곳곳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교보문고의 변신을 두고 여러 가지 불만도 나오는 모양이다. 서점은 도서관이 아니다, 왜 책을 팔지 않고 읽게 하느냐.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책은 어떻게 하는가. 반품을 하면 출판사만 손해 보는 게 아니냐 등등이다. 여러 출판사에 물어보니 “책을 진열한 공간이 줄어드는 게 걱정”이란 의견이 있을 뿐 손때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적다. “손때 묻고 접혀도 좋으니 우리 책 한번 봐달라고 테이블에 슬쩍 갖다 올려놓을까 생각도 했는 걸요.”

 요즘 출판계의 화두는 책의 ‘발견성’을 어떻게 확보하는가다. 즐길 콘텐트는 차고 넘치고, 주로 인터넷으로 책을 사다 보니 좋은 책이 나와도 독자에게 발견되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이다. ‘찾아가고 싶고, 오래 머무르고 싶은 서점’을 만든다는 건 발견성을 높이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일본의 서점 ‘쓰타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쓰타야를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는 『지적자본론』(민음사)이란 책에서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에 담긴 어떤 세계관, 경험,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곳이라고 말한다. 팔고자 하는 것이 책 자체라기보다 그 안의 무엇이라면, 앉아서 책을 읽는 손님을 흘겨볼 이유는 없다. 오프라인 서점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시간과 공간’을 선물해야 한다. 5만 년 된 카우리 소나무와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은 생각보다 편안하고 특별했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