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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정치보다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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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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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대만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부처는 행정원 대륙위원회다. 한국의 통일부에 해당된다. 린쭈자(林祖嘉) 특임부주임(제1차관)은 27일 인터뷰를 하면서 “양안관계를 돌이켜보면 정치는 (협상하기가) 곤란했지만 경제는 쉬웠다. (관계개선에서) 경제가 정치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린 부주임은 양안관계를 설명하면서 남북관계에 한마디 조언했다. 그는 “북한의 경제가 어려울 때를 노려라. 대만도 중국이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선포했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 대륙을 뚫었다”며 웃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3통’ 교류 방안으로 통상(通商)·통우(通郵)·통항(通航)을 제시하자 83년 최초로 대만 기업이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의 우표가 붙은 편지가 홍콩을 경유해 대만에 배달됐고 친척 방문도 공개된 비밀이었다. 대만은 87년 10월 대륙 내 친척 방문을 의미하는 ‘탐친(探親)’을 허용하면서 1949년부터 38년간 고수했던 불접촉·불담판·불간섭의 ‘3불정책’을 풀고 본격적인 대륙 진출을 했다. 그 이후 중국과 대만은 지속적으로 관계를 심화시켰다. 2014년 양안의 무역 규모는 1983억 달러다. 중국의 대만 수출은 463억 달러, 대만의 중국 수출은 1520억 달러. 인적 교류는 941만 명에 이르러 올해는 10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대만은 또한 관세인하·재산권보호협약 등 23개의 경제협정도 체결했다.

 하지만 양안관계가 양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경제교류에 편중되다 보니 불만도 터져 나왔다. 2014년 3월 불거진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과정에서 대만 학생들과 시민들이 입법원(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격렬하게 반대했다. 현재 서비스무역협정은 입법원에 계류 중이다. 저우야웨이(周雅薇) 민진당 국제사무부 간사는 “서비스무역협정으로 중국 노동자들이 대만으로 몰려올 경우 어려운 경제로 가뜩이나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민진당이 양안 관계를 조정할 생각은 없다. 황즈팡(黃志芳) 민진당 국제사무부 주임은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현상유지를 주장하며 중국 노동자의 임금인상과 경기둔화 등으로 중국에 너무 집중하는 것을 피하고 동남아 시장으로 분산하자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대만의 이런 고민이 부럽다. 대만의 양안관계는 양(量)에서 질(質)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은 정치 문제에 발목이 묶여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데 말이다. 아직도 교류의 양적인 측면에서 빈약하기만 하다. 다음달 11일 개성에서 열리는 남북 당국회담이 기회다. 남북한은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와 같은 정치적 문제보다는 경제에 집중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북한은 경원선 복원, 농업 협력을 과감하게 받으면 어떨까. 그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에서)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