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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기부 1조 받아 농어민지원 … 재계 “결국 준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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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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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30일 국회에서 ‘한·중 FTA 국회 비준 관련 회담’을 열어 비준안 처리를 최종 합의했다. 앞줄 왼쪽 부터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 [김성룡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한 건 다행이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FTA를 처리하는 대가로 농·어업이나 중소기업에 과도한 혜택을 줘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선심성 지원 대책이 쏟아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FTA 피해 산업 지원 놓고 논란
예산도 1조6000억 추가 지원
총 3조, 피해 예상액의 7배 규모
기업 돈으로 선심정책 선례 남겨

 정부가 밝힌 한·중 FTA에 따른 20년간 피해액(생산감소액)은 ▶농림업 1540억원(연평균 77억원) ▶수산업 2079억원(연평균 104억원) 등 3619억원이다. 지난 6월 정부는 한·중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내면서 농림수산업에 480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날 국회에 모인 여·야·정 협의체는 농·어업 분야에 1조6000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기업이 내는 상생협력기금 1조원까지 합하면 총 3조원에 이른다. 애초 정부가 추산한 피해금액의 7배가 넘는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민간기업과 공기업, 농·수협에서 걷겠다는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이다. 야당에서 주장했던 무역이득공유제의 대안으로 마련됐다. 무역이득공유제는 FTA로 이득을 본 기업에서 일정 부분을 환수해 피해를 보는 쪽에 지원하자는 제도다. 그러나 실제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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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여·야·정은 기업에서 기부금을 받아 10년간 1000억원씩 1조원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협력기금을 내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정부는 “자발적 기부를 통해 기금을 걷기 때문에 민간기업엔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경제계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관계자는 “상생기금이란 게 결국 기업에 매기는 준(準)조세 아니냐”며 “어떤 기업이 FTA로 얼마나 혜택을 보는지도 모르는 판이니 결국 재계 서열에 따라 돈을 갹출해서 내게 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중 FTA로 피해를 보는 농업 분야가 많지 않은데도 기업에서 1조원의 기금을 걷어서 지원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중 FTA 협상에선 쌀과 쇠고기·고추·마늘·조기 등 주요 농·축·수산물은 개방하지 않았지만 지원은 농·어업 분야에 집중됐다. 여·야·정이 마련한 추가 대책에 따라 FTA 피해보전직불제의 보전 비율은 90%에서 95%로 인상되고, 직불금 산정에 대한 농민의 이의 제기 절차도 마련된다.

 반면 한·중 FTA에 따라 단기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제조업은 애초에 마련한 8035억원 규모의 지원책이 그대로 확정됐다. 제조업은 한·중 FTA가 발효되면 최초 10년간 연평균 4687억원의 생산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효 후 15년이 지나야 연평균 6034억원의 생산 증가효과가 생긴다. 정부는 중국산 공산품의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중소기업의 사업 전환과 경영안정을 위해 3000억원을 지원하고 취약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3100억원을 융자해주기로 했다. 해외 유통망을 확보하고 FTA 활용도를 높이는 데도 1935억원이 쓰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FTA로 피해를 보는 분야에 많은 돈을 지원했지만 장기적인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경쟁국과 비교해 우위가 있는 사업으로 전환하는 데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원배·조현숙 기자, 이수기 기자 oneby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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