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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선택하는 또 하나의 삶의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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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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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아버지는 제게 유난히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단순한 분이셨지만 또한 무서울 정도로 지혜로우셨습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아버지는 저를 걱정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몹시 사랑했습니다.” 20세기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아버지를 잃은 후 후견인에게 보낸 편지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른 내용이 기록돼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학대받으며 긴 세월 동안 고통을 겪었소. 또한 내가 행동으로 보여준 노골적인 냉소를 감당하며 서서히 죽어갔소. 관 속에 누운 어머니 얼굴, 암으로 망가진 잿빛 얼굴을 보면서 깨달았소. 그것이 희생자의 얼굴이라는 것을. 나는 어머니를 희생자로 만든 체제를 저주했소.” 스위스 정신분석가 알리스 밀러는 두 인용문을 제시하면서 제임스 조이스가 끝까지 아버지를 이상화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문제의 원인을 체제 탓으로 돌렸다고 설명한다.

 경쟁을 기본 원칙으로 살아가는 남자에게 강자와 약자 중 어느 편에 서겠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자명하다. 비록 그것이 가해자 편에 서는 일일 때조차 인간의 자기보호 본능은 생애 초기부터 강자를 선택한다. 아이들은 부모 중 누가 집안의 실권을 쥐고 있는지 파악해 심리적으로 권력자 편에 선다. 그 양육자로부터 폭력을 당할 때조차 그 부모에게 예속된 채 살아남기 위해 아이는 자신을 비난하면서 부모를 미화한다. 실제로 조이스는 이렇게 썼다. “저 자신이 죄인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잘못까지도 사랑했습니다.” 그는 폭력 경험을 승화적으로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독재자는 그렇지 못한 이들이라고 밀러는 설명한다. 폭력적 독재자들은 공격자와 동일시를 통해 폭력을 내면화한 후 그것을 확대 재생산했던 이들이다.

 강자 편에서 약자를 공격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성추행 피해 아동에게 친구들이 “더럽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무슨 비디오 사건이 터지면 곧장 피해 여성을 향해 편견의 잣대를 들이댄다. 폭력 피해 여성을 향해 “맞을 짓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얼마나 견고한지 기업들조차 싱글맘 보호 시설에 지원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고 들었다. 자기 아이와 여자를 버린 남자에게는 관대하면서,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여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강자 편에 서는 생존법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가해자의 편에 서는 선택은 잘못임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을까.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