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팬츠 여성 몰카, 다리 찍으면 유죄 전신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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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를 무단 촬영했더라도 신체의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을 찍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전신 촬영, 수치심 유발 해당 안 돼”
법원 판결 놓고 처벌 기준 논란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는 지난 4~5월 지하철 역사 등에서 58차례 몰래카메라를 찍은 혐의(성폭력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이모(36)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씨는 거의 매일 지하철 4호선 범계역 계단에서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을 뒤따라가며 몰래 사진을 찍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박 판사는 이씨의 스마트폰에 남은 58장의 사진 중 다리 부분을 부각한 사진 43장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전신을 촬영한 15장의 사진을 두고 고심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여성 등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성폭력특례법 14조 1항의 규정상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의 범위’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고민한 것이다. 박 판사는 판결문에서 “시스루·핫팬츠·미니스커트 등 여성 패션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여성을 무단 촬영했을 때 어떤 경우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구별이 어려워졌다”고 적었다. 이어 “노출이 심한 옷이라도 평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전신까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며 “이는 민사로 풀 문제”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부 변호사들은 “전신 사진이라도 촬영자의 의도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데 있는 게 명백하다면 처벌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 유발 관련 신체’의 기준을 정한 건 2008년이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노출 정도, 촬영자의 의도와 경위, 촬영 장소·각도 ,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판결은 엇갈렸다. 옷을 갈아입는 부인의 등을 몰래 찍은 남편, 에스컬레이터에서 여성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찍은 게임 개발자 등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한 해에도 수천 건의 각종 몰카 범죄가 벌어지는데 기준을 지나치게 좁히면 오히려 법적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장혁·채승기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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