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장애인 머물 순 없다” 의족 차고 다시 점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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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7일. 세르비아의 여자 농구 기대주 나타샤 코바체비치(21)는 인생의 항로가 바뀔 만한 큰 사고를 겪었다. 19세 때였다.

2년 만에 코트 선 코바체비치
팀원과 버스로 이동 중 교통사고
왼쪽 무릎 아래 절제 수술 아픔
포기 않고 재활훈련, 프로팀 입단
5득점 승리 견인에 관중석 눈물

 헝가리의 프로 농구팀 제르에서 뛰던 코바체비치는 동료 선수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교통 사고를 당했다. 감독과 단장이 목숨을 잃은 사고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가혹한 운명과 맞닥뜨렸다. 사고로 인해 부상 당한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아버지와 농구 선수 출신 어머니의 피를 물려 받아 세르비아 대표팀에 뽑혔던 그는 그렇게 한 순간 ‘키 큰 장애인 소녀’가 됐다.

 2년이 흐른 지난 11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경기에 코바체비치가 나타났다.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찬 채였다.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세르비아)의 유니폼을 입은 그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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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체비치는 11일 스투덴트전에서 거친 몸싸움을 펼치는 투혼을 보였다. [사진 코바체비치 페이스북]

 팬들의 응원에 답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코바체비치는 이날 등 번호 7번을 달고 경기에 출전했다. 교체 선수로 출전한 그는 큰 키(1m88cm)를 활용해 리바운드 싸움에 가세했고, 적극적인 슈팅으로 득점도 올렸다. 레드스타가 상대팀 스투덴트를 78-47로 꺾는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이날 5득점을 기록한 코바체비치에게 쏟아졌다.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지난 2년 간의 시련이 꿈처럼 느껴진다. 다시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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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락으로 떨어진 코바체비치를 다시 일으킨 건 그의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자신의 회복 과정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전하며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긍정의 에너지를 높이 산 국제농구연맹(FIBA) 유럽지부는 지난해 2월 그를 ‘유소년 담당 홍보대사’로 임명해 힘을 실어줬다. 어린 농구 유망주들을 격려하며 새 힘을 얻은 코바체비치는 한 달 뒤 자신의 이름을 딴 ‘나타샤 코바체비치 재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부금을 모아 가정 형편이 열악한 운동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농구 선수로 재기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족을 차고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걷고, 달리는데 성공한 뒤엔 점프도 하고 드리블 훈련도 하며 차근차근 체력을 키웠다. 현역 선수 못지 않은 움직임에 감탄한 세르비아의 명문팀 레드스타가 이달 초 코바체비치에게 입단을 제의해 극적으로 농구화를 다시 신었다. 2년 만의 프로무대 복귀전이 끝나자 영국 BBC 등 유럽 언론은 “의족을 차고 코트를 누비는 프로농구 선수는 전세계에서 코바체비치가 유일할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장애를 숨기지 않는다.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로 상반신 사진만 사용하는 언론 매체들과는 달리 코바체비치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의족이 드러난 사진을 거리낌없이 공개한다. 의족을 찬 채 비키니를 입은 사진도 올려놨다. 그는 트위터 메인 페이지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거야. 현재를 즐기자!(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CARPE DIEM!)’라는 글을 올렸다.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그가 수없이 되뇌었던 문구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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