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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국부펀드가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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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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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전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가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에 투자해 논란이 됐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는데, 한국투자공사가 이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국부펀드는 무엇이죠. 그리고 왜 국부펀드가 미국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게 논란이 되는 건가요.

국가가 주식 등에 투자하는 돈 … 전 세계 8000조원 달하죠

국부펀드는 나라의 자산(國富)을 불리기 위해 설립한 특수 목적 기관을 뜻합니다. 이 기관에서 운용하는 기금을 뜻하기도 하죠. 가정에서도 미래를 위해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거나 펀드나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를 해서 자산을 키우는 것처럼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살림을 하고 남은 돈(재정 흑자)이나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 번 돈(자원 수출)을 펀드·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해 돈을 불려 나가는 거죠.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국부펀드를 설립해 운용하고 있는 돈은 지난해 말 기준, 무려 7조 570억 달러(약 8159조원)에 달한답니다.

◆국부 펀드 출발은 오일 머니=국부펀드는 상품 펀드와 비상품펀드로 나뉩니다. 상품 펀드는 천연 자원으로 번 돈을 기금으로 해서 돈을 불리는 방식입니다. 천연자원으로 돈을 마련하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국영기업이 직접 천연 자원을 해외에 팔아 돈을 벌거나, 민간 기업이 천연 자원을 수출하면 여기서 세금을 거둬 재원을 마련하는 거죠. 가장 대표적인 천연 자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바로 석유입니다. 주로 중동지역에서 석유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굴리기 위해 만든 것이 국부펀드의 시작입니다. 쿠웨이트의 KIA(쿠웨이트투자청)은 1953년에 설립됐죠. 세계 최대의 ‘큰 손’중 하나인 UAE의 ADIA(아부다비투자청)은 1976년에 설립됐습니다. 2000년대 원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중동지역 국부펀드도 전성기를 맞습니다.

 그렇다면 석유 한방울 안나는 한국같은 경우는 무슨 돈으로 투자 기금을 마련하는 걸까요. 국제 수지 흑자로 모은 외환보유액이나 재정 흑자를 통해 축적된 자금으로 투자금을 만듭니다. 이걸 비상품펀드라 불러요.

쌓인 외환보유액으로 투자금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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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고는 한마디로 ‘달러 곳간’입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달러를 쌓아두고 있는 창고죠. 외환위기 때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죠. 이 곳간이 비어 국민이 금을 모은 뒤 이를 국제 시장에 내다 팔아 달러 곳간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수출로 돈도 많이 벌어들이면서 이 곳간이 두둑해졌습니다. 가만히 쌓아만 두긴 아까우니 이 돈을 굴려 수익을 내기로 한 것이죠. 2005년 7월 우리나라에도 한국투자공사(KIC)란 이름의 국부펀드가 설립된 이유입니다.

 ◆‘큰 손’으로 떠오른 아시아 국부펀드=달러 곳간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한건 한국 뿐만이 아닙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는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외환보유액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10월 기준 아시아 국가가 보유한 국부펀드 자산은 전세계 국부펀드 시장의 39.1%를 차지하게 됩니다. ‘오일 머니’가 몰려있는 중동 지역(37.1%)보다 많은 돈을 주무르게 된거죠. 아시아에서 가장 ‘큰 손’은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중국입니다. 중국투자공사(CIC)는 노르웨이의 정부연금펀드(GPFG)와 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에 이어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노르웨이의 정부연금펀드(GPFG)가 8730억 달러, 아부다비투자청이 7730억 달러, 중국 CIC가 7467억 달러입니다. 중국은 이밖에도 국가외환관리국(SAFE)이 세계 6위, 홍콩금융청이 세계 7위, 중국 사회보장기금(NSSF)이 세계 10위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싱가포르투자청(GSIC)과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도 각각 8위와 11위 규모죠. 한국 KIC는 투자자산이 847억 달러로 세계 15위입니다.

한국 투자자산 847억 달러 … 세계 15위

 이런 아시아의 위상을 반영하듯 이달 초 전세계 큰손이 서울에 집결했습니다. KIC 주최로 열린 ‘공공펀드 공동투자협의체’ 연차 총회에는 노르웨이·중국·싱가포르·일본·프랑스 등 전세계 주요 국부펀드와 연기금을 비롯, 블랙스톤·블랙락 등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와 국제금융 기구, 기업등이 대거 참가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문인 로스차일드가의 린 포레스터 드 로스차일드 EL 로스차일드 홀딩스 회장, 스테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등 유명 인사가 자리를 빛냈죠. 호텔 체인인 힐튼의 상속녀인 니키 힐튼과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제임스 로스차일드도 이 자리에 참석해 화제가 됐죠.

 이들 ‘큰 손’이 한자리에 모여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요. 사실 최근에는 돈이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주식 가격은 너무 올랐고, 채권은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죠. ‘공공펀드 공동투자협의체’에 참석한 이들도 이런 고민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대체투자를 늘리자는 데 뜻을 모았죠. 대체투자란 주식·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방식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투자로 사모펀드·헤지펀드·부동산·원자재·선박 등 대안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뜻합니다. 총회가 끝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홍철 KIC사장은 “현재 KIC의 대체투자 비중이 운용자산의 12%정도인데 내년엔 15%까지 늘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부펀드에는 국적이 있다=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도록하죠. 저금리,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로 대체투자로 각광받고 있는 이때, 왜 KIC의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대한 투자는 논란이 됐던 걸까요. 그건 국부펀드에 기대하는 역할이 일반 투자회사와는 달라서입니다. 일반 투자기관은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면 되지만 국부펀드는 그 재원이 국민 세금에서 나오니 만큼 국가의 전략적 목표를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이 깔려있습니다. 당시 여론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았습니다. 국부펀드가 이런 헤지펀드에 투자를 하는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내 기업에 칼날을 겨눈 것과 마찬가지란 분위기가 형성됐지요. 급기야 안홍철 KIC 사장은 “좋지 않은 감정을 만들어내 불편하게 생각한다”며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헤지펀드에는 투자를 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수익률보다 국가 전략적 목표가 우선

 국부펀드는 국가가 국민 세금으로 운용하는 기금이다 보니 제약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예를들어 2007년 두바이 국부펀드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국제 공항 지분을 인수하려했지만 뉴질랜드 정부의 개입으로 취소됐습니다. 안보상의 우려 때문이었죠. 돈에는 국적이 없다지만 국부펀드엔 국적이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또 바로 이 지점에서 국부 펀드의 장점이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국가가 운용의 주체다 보니 한마디로 ‘목돈’을 주무를 수 있습니다. 이 목돈으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죠. 또 해외자원이나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처럼 국가나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보완해 주기도 합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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