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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국적기 타고 해외 가봤으면” … 대한항공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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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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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3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에서 조중훈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대한항공을 출범시켰다. [사진 한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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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 운송회사인 한진그룹을 일군 고(故) 조중훈(1920∼2002) 회장. 그가 꼽은 가장 극적인 인생 순간은 언제였을까.

조중훈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
박 전 대통령 부탁 받고 공사 인수
베트남전 당시 1966년 퀴논항서
미군 물자 수송한 게 최대 승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장면이 2일 그랜드하얏트인천에서 열린 ‘한진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소개됐다. 조 회장의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사진)를 통해서다. 그룹 창립 70주년을 맞아 40명 넘는 전직 임원·지인을 인터뷰해 조 회장이 1996년 낸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을 보완했다.

 조 회장은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물자운송용역을 진행한 걸 인생 최대의 승부로 꼽았다. 64년 정부의 베트남 파병이 진행되던 당시 조 회장은 군수경기를 타고 한국경제가 살아날 것이란 걸 확신했다. 광복 직후 트럭 한 대를 구입해 인천에 ‘한진상사’란 운송회사를 차린 후 미군 군수품 운송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시기였다. 사업에 대한 결심은 65년 동남아시아 경제시찰단에 참여해 순방하던 중 베트남 퀴논항 상공에서 내려다본 항구의 전경을 보고 굳어졌다. ‘물 반 배 반’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퀴논항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조 회장은 미군 측에 “미군이 1주일에 한 척도 못 감당하는 하역을 3일에 한 척씩 해내겠다”고 자신했다. “약속을 못 지키면 하루에 벌금 1만 달러를 내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이런 각오 때문에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퀴논항 하역장과 수송도로에서 현장을 지키고 맨 앞 차량의 조수석에 앉으며 현장을 이끌었다. 66년 미군과 첫 계약을 하고 나서부터 71년까지 조 회장이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1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가 채 안됐다. 조 회장은 “금전적인 수입보다, 훈장보다 값진 소득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더라도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런 자신감은 누적 적자가 27억원이었던 대한항공공사를 69년 인수하기로 결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간부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국적기를 타고 해외에 나가보는 게 소망”이라고 부탁하자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시 항공공사는 수명이 다 한 프로펠러 비행기 7대와 제트기 1대를 보유한 동아시아 최하위 항공사로 해외 순방기로 사용할만한 비행기가 없었다. 조 회장은 임직원 앞에 섰다. “만인에게 유익한 사업이라면 만 가지 어려움과 싸워나가면서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게 기업의 진정한 보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시작된 대한항공은 항공화물수송 세계 3위, 항공여객수송 세계 12위에 올라 있다.

 선택의 기로 때마다 조 회장은 “사업은 예술이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남을 모방하지 말고 자신의 혼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창의력과 아이디어, 노력이 융합해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책 추천사에서 “(위기 상황에서) 사업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아이디어와 예술혼으로 창조할 작품이라고 생각한 분”이라고 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업을 예술처럼 여기며 스스로 또 하나의 길이 되셨던 선대 회장님의 길을 따라 한진그룹은 계속 전진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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