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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종료로 기우는 盧] 宋특검 보고 받고 마음 굳힌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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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북 비밀 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마음이 특검 수사연장 불가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특검 수사는 종결하되 새로 불거진 박지원(朴智元)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1백50억원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선 검찰에 진상 규명을 맡길 생각인 듯하다. 이른바 '비밀 송금'과 '정치자금'을 분리해 처리하자는 것이다.

자연 논란의 핵심도 1백50억원 부분에 대한 수사를 누구에게 맡기느냐는 '수사 주체'에 대한 문제로 옮겨지고 있다.

盧대통령이 장고 끝에 대북 송금-1백50억원 수사의 분리 구상을 가다듬게 된 데는 21일 아침 청와대에서 한 송두환(宋斗煥)특검과의 조찬 면담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宋특검이 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을 특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 盧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盧대통령으로선 특검 기간 연장 요청을 승인하더라도 DJ와 호남, 진보 성향 지지층의 반발 강도를 다소 완화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고, 거부하더라도 DJ를 보호한다는 정치적 고려로 인해 특검 수사를 강제 중단시키는 모양새는 피하게 됐다.

더욱이 宋특검이 유보적 태도를 취한 것도 盧대통령이 일단 연장 불가 쪽으로 마음을 옮기게 한 것으로 보인다. 盧대통령이 宋특검에게 1백50억원 부분-남북 정상회담의 연관성과 함께 "기존 특검이 이를 (1차 연장 기간인 한달 동안) 수사하면 2차 연장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宋특검은 "1차에 끝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나 뜻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기간 연장론자로 알려진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조차 "1백50억원의 양도성예금증서(CD)가 사채시장에서 교환돼 흘러갔을 경우 계좌추적 시간이나 관련자들이 외국에 있는 실정 등을 감안하면 특검이 수사하다 만 상태에서 마무리하고 검찰에 넘어가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특검 연장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강한 여론에 직면해 있던 盧대통령으로선 '수사 효율상'의 명분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다 청와대 내부에는 "특검팀이 정치적 사건의 뒤치다꺼리를 맡는 건 온당치 못하다"(朴範界 민정2비서관)는 기류가 상당하다. 새로 불거진 1백50억원 부분에 대한 수사는 자금의 조성보다 용처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사건의 성격이 정치자금으로 튈 수도 있기 때문에 특검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宋특검도 1백50억원 부분에 대해선 "특검법상 관련 사건이나 특검 수사의 목적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 문제에 대한 盧대통령의 의중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 것은 22일 아침 서울 명륜동 뒷산의 한 배드민턴장에서였다.

이날 盧대통령은 권양숙(權良淑)여사와 약 10분간 배트민턴을 친 뒤 주민들과 정자에 앉아 환담을 하며 여론을 직접 청취했다. 盧대통령은 주민들에게 "(특검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주민 의견이 엇갈리자 盧대통령은 "막 뒤범벅돼선 안된다"면서 흉중에 있는 생각을 꺼냈다.

이런 盧대통령의 언급 내용은 대통령 전속 촬영사에 의해 카메라에 담겨 방송사로 넘겨졌으며, 盧대통령의 발언 장면은 여과없이 TV 화면에 소개됐다. 청와대는 그때까지 盧대통령의 의중에 대해선 일절 함구한 채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의전팀이 홍보수석실과 협의 없이 무심코 방송사에 보낸 필름에서 盧대통령의 생각이 노출된 것이다. 다만 盧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고심하는 대목은 검찰과 한나라당.영남 쪽의 반응이다.

강금실(康錦實)법무부 장관은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요구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검찰이 한다 해도 야당은 제2특검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법리보다 정치 논리를 앞세운 선택을 했다는 점도 문제다. 더군다나 특검 연장 찬.반론이 영.호남으로 갈려 있다. 영남 여론이 악화되면 신당의 전국정당화도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盧대통령은 휴일인 22일 늦게까지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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