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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F-X 사업, 근본 문제 눈감은 채 밀어붙일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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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8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초대형 국책사업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이 정부의 실책으로 차질을 빚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넘어가고 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물러났지만 KF-X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청와대는 선을 그었다. 돈은 돈대로 들고, 전력(戰力)은 전력대로 공백이 생기는 최악의 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를 감독해야 할 국정의 최고책임자부터 문책(問責) 문제에 눈을 감아버렸으니 누굴 탓해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7일 자체 기술 개발로 핵심기술 이전 무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위사업청장의 보고를 받고, “계획된 기간 내에 사업을 성공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을 실어준 셈이다. 안보의 핵심 역량을 좌우할 천문학적 규모의 국책사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면 그 원인을 따져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지만 박 대통령은 기술이전 문제로 국민에게 혼란을 준 점만 질책하고 그냥 넘어갔다. 근본적 문제를 외면한 채 면죄부를 준 꼴이다. KF-X 사업의 좌초 가능성을 우려하며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나오고 있는 이유다.

 방사청장의 청와대 보고를 계기로 정부 당국자들은 자체 기술 개발에 돌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KF-X 사업과 관련해 책임을 면키 어려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그제 국회 보고에서 핵심기술 자체 개발을 통해 2025년까지 6대의 시제기를 생산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까지 밝혔다. 그럴 것 같았으면 왜 처음부터 자체 기술 개발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KF-X 사업에는 국방부·방사청·공군·국방과학연구소 등 여러 곳이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숱한 말 바꾸기와 방산(防産) 비리로 국민을 실망시켜 온 이들 부처와 기관의 말만 믿고 자체 기술 개발을 낙관해도 좋을지 의문이다. 중도에 일이 잘못됐으면 책임 소재를 가리고 문제점을 바로잡은 뒤 다시 시작하는 게 맞다. 책임질 사람들을 그대로 둔 채 의지와 의욕만 갖고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