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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책금융 수술 없이 구조조정 제대로 되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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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산업은행이 어제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최대 채권자인 수출입은행이 신규 출자와 대출을 합해 4조2000억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해양 플랜트 공정 지연과 수주 취소 등에 따라 발생한 최대 6조2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메꾸기 위한 것이다. 국책은행을 통해 지원되는 돈은 결국 국민이 낸 혈세다.

 그동안 밝혀졌듯이 대우조선 부실은 구조적 문제다.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킨 경영진과 이를 까맣게 모른 채 낙하산을 내려 보내기 바빴던 국책은행은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줬다. 구조조정을 채권단에 떠넘겨온 정부도 마찬가지다. 산업 경쟁력 향상은커녕 부실기업 지원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관리인 위험’에 구조조정이 발이 묶여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위험에 빠져 있는 기업은 대우조선 하나가 아니다. 조선업만 해도 대우조선과 STX조선, 성동조선 등 주요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채권단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들을 나눠 맡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등은 일사불란한 구조조정을 위한 협력보다는 ‘내 자식 살리기’와 실적 과시에 몰두했다. 올해 전 세계 수주 1~5위를 국내 조선사들이 독식하면서도 막대한 부실만 쌓이는 아이러니가 이래서 생겼다.

 그동안 양산된 좀비기업은 이제 전체 산업 경쟁력을 위협할 규모가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영업수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대기업이 지난해 말 전체 기업의 15.2%인 3295개였다. 6곳 중 하나꼴이다. 이들 대부분이 국책은행과 보증기관이 제공하는 정책금융으로 연명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보증 연장으로 한 해 한 해를 버티는 중소 좀비기업이 지난해 말 현재 1901곳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정책금융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는커녕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 처리는 이런 정책금융을 수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먼저 좀비기업까지 먹여살리는 과잉 지원과 기관들의 무리한 실적 경쟁에서 빚어지는 중복 지원을 걷어내는 게 급선무다. 지난해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꾸며내 금융권을 뒤흔들었던 모뉴엘 사태도 기획재정부 산하인 수출입은행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인 무역보험공사의 실적 욕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를 막으려면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필요하면 통폐합까지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구조조정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설정하고 과감히 실행하는 추진력도 필요하다. 단위 기업 차원을 넘어 산업 전체의 경쟁력과 수요·공급을 따져 죽이고 살릴 기업부터 확실히 가려내야 한다. 그러려면 고용과 선거 영향이 두려워 좀비기업을 끝없이 지원하는 정치금융의 고리가 끊겨야 한다. 실무책임자인 금융위원장이나 산자부 장관이 극복하기 어렵다면 경제부총리나 대통령이라도 나서야 한다. 1990년대 이후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의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일본의 실패를 따라가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