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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000조원 계좌 전쟁 … 더 치열하게 붙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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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거래은행을 옮길 때 기존 계좌에 걸려 있는 자동이체를 새 계좌로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계좌이동제’가 오늘 시작된다. 지금까진 고객이 일일이 전화하거나 방문해 자동이체 계좌를 하나하나 바꿔야 했다. 국민 1인당 월평균 자동이체가 8건에 이르는 현실에서 이는 현실적으로 거래 은행을 바꾸기 어렵게 하는 장벽이 돼왔다. 하지만 이제 고객이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이체계좌를 옮길 수 있게 된다. 내년 2월부터는 아예 새로 통장을 개설하는 은행에 옮겨달라고 얘기만 하면 된다. 은행 선택의 자유를 오랫동안 제한해온 족쇄가 풀리는 셈이다.

 현재 자동이체가 가능한 수시입출금식 예금계좌는 2억 개, 예금액은 243조원(개인예금 기준)에 달한다. 은행권 전체 수신액의 21.6%다. 이들 계좌에서 지난해 26억1000만 건이 이체돼 800조원이 옮겨갔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수료와 이자차익만 은행권을 통틀어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체액과 예금액을 합쳐 1000조원이 넘는 돈을 붙잡으려는 은행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금리·수수료 혜택을 넘어 이통사들의 가족할인이나 결합상품과 비슷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

 이런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게 금융개혁의 본질이다. 금융개혁은 이미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4대 개혁의 하나다. 그런데 대통령은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은행의 영업시간을 대표적으로 거론했다. 부분적으로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제대로 된 진단은 아니다. 보신주의와 영업시간 모두 경쟁 없는 시장에서 파생된 문제의 일단일 뿐이다. 금융산업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금융산업이 안주해온 진입장벽과 상품 칸막이를 부숴 경쟁 강도를 높여야 한다. 계좌이동제는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고객 칸막이를 허무는 첫걸음이다.

 살아 있는 시장은 경쟁이 만든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계좌이동제가 순탄하게 시행되고 안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은행과 금융시장을 함께 살리는 길이다. 계좌이동제 안착에 금융개혁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