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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는 그만 … 공기업 채용 ‘스펙 다이어트’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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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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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안 묻는 공공부문 입사지원서(오른쪽).

요즘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입사지원서에는 학력이나 가족관계, 어학 점수, 학점을 적는 칸이 없다. 대신 ‘XX직무 관련 학교 교육을 이수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 답을 하는 항목이 들어있다. 그 밑에 이수한 교과목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게 돼 있다. 소설처럼 쓰는 바람에 ‘자소설’ 논란이 이는 자기소개서도 필요 없다. 대신 경력사항과 자신이 지원한 직무와 관련된 그 간의 활동을 기술하면 된다. 학력은 아예 보지 않는다.

지원서 학력·어학점수 칸 없애고
직무 관련 교과목·내용 쓰게 해
면접도 구체적 경험 위주로 질문
고졸 응시생이 대졸자 누르기도

 면접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자기 소개와 장점을 말하라’ ‘주량은 어떻게 되나’ ‘배낭여행을 많이 다닌 것 같은데 인상 깊었던 곳은’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이 많았다. 올해는 인성면접으로 포장된 이런 질문이 사라지고 직무에 따라 차별화된 질문이 던져졌다. 예컨대 고객응대 업무에 지원했다면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반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봤는가.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떠했으며, 고칠 점은 없었는가’ 식이다. 관련 분야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대답할 수 없다.

 채용 과정이 이렇다 보니 고졸 취업준비생이 대졸자를 누르고 취업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근로복지공단은 6급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예전 같으면 대졸자가 지원하던 직급이다. 그런데 고졸 인재 2명이 당당히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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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국토정보공사도 이런 방식으로 올해 93명을 채용했다. 그랬더니 170대 1이던 경쟁률이 70대 1로 떨어졌다. 인사담당자가 낙담했다. 그런데 필기시험 응시율은 30%에서 50%로 높아졌다. 허수 지원자가 확 줄어든 셈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 관계자는 “기본적인 역량을 갖춘 신입사원이어서 현장적응능력이 빠르다”며 “경력 같은 신입사원”이라고 말했다. 매년 1~2%이던 신입사원 퇴사율도 사라졌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아예 무(無)서류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지원자에게 필기시험 자격을 준다. 물론 시험은 직무능력 중심이다. 그래서인지 면접시험까지 치른 응시생 중 60% 가량이 인턴과 같은 실무경험자였다. 심지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직무 관련 아르바이트 경험자를 뽑기도 했다.

 올해 한국국토정보공사에 입사한 사원은 “지적기사 자격증이 있는데도 스펙이 부족해 번번이 떨어졌다. 그런데 시험 과정이 바뀌면서 측량분야의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당당히 합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공공부문에서 3000여 명을 이런 방식으로 뽑고 있다. 내년부터는 전면 시행할 방침이다. 대신 전공필기시험은 취업준비생의 준비기간을 고려해 기관별로 개편내용을 미리 공고하고 1년 동안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부터 모든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직무중심, ‘스펙다이어트형’ 채용이 실시될 전망이다.

 서부발전 인사담당자는 “예전엔 신입사원을 뽑으면 바로 현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교육했다”며 “이젠 그럴 필요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고, 허수 지원도 사라져 채용과정의 효율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스펙다이어트 채용은 공공부문 뿐 아니라 대기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롯데, 신세계, 포스코, 이랜드, 금융회사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천편일률적인 스펙쌓기로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유능한 인재확보는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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