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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 모아 쓰고 또 쓰면 누구나 서예의 제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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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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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2015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특별전인 ‘명사 서예전’에는 음악인 장사익, 중앙일보·JTBC 홍석현 회장 등 사회 각계에서 활동하는 28명이 서예 솜씨를 뽐냈다.

전주 하면 떠오르는 비빔밥을 내세운 ‘전주비빔밥 축제’에 10만 명이 몰렸다. 전주를 상징하는 ‘한옥마을’ 언저리는 구경꾼들로 문전성시다. 지난 주말, 비빔밥과 한옥 못지않게 손님을 끈 또 하나의 문화 병기가 있었다. 서예다. 24일 오후 ‘2015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이하 전북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세계 서예 흐름을 감지하려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마침 열리고 있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원로 서예가 심재영(83) 국제여성서법학회 명예이사장은 ‘붓 잡고 살자’는 메시지로 듣는 이들 마음을 울렸다.

전북비엔날레 내달 15일까지
전주, 세계 서예의 도시 발돋움
장사익 등‘명사 서예전’도 볼 만

 “여러분 시선(詩仙)이란 말 아시지요. 시성(詩聖)도 있지요. 서성(書聖)은 누구지요? 그렇죠, 왕희지입니다. 그럼, 서선(書仙)이란 단어가 있습니까. 없죠. 그만큼 서예는 어려우면서도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기백을 모아 쓰고 또 쓰면 누구라도 제왕의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10회를 맞은 올 전북비엔날레에는 5개 부문 27개 행사에 18개국 842명 작가가 창작한 1150여 점 서예 작품이 모였다. 1997년 제1회 비엔날레 때 3개 행사에 8개국 119명이 참여했던 일을 생각하면 어째서 서예가 전북의 자랑이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전주향교문화관 뜰에는 깃발서예가 흩날리고, 한옥마을 한벽루에는 밤이면 등불서예가 반짝인다. 이달 1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전주 전역이 세계 서예의 도시로 발산한다.

 김병기 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은 “22년 세계 각국의 서예인들과 교유하며 공을 들인 결과가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고 기뻐했다. 한지와 먹물을 보내주고 각종 자료를 교환하며 유럽과 미주 지역 서인들을 꾸준히 초대했더니 보고 그리던 수준에서 이제는 한자를 배우고 나름의 이론을 정립하며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보내온다는 것이다.

 김 총감독은 올해 특히 자랑하고 싶은 전시로 ‘한글서예유산 임서전’을 꼽았다. 조선 궁체의 다양한 범본을 여성 서예가들에게 한 점씩 나눠주고 그 정갈하면서도 꿋꿋한 마음을 되살려달라 부탁했더니 진본 버금가는 현대 궁체가 탄생했다. 의외로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 전시로는 ‘명사 서예전’을 추천했다. 음악인 장사익씨는 이미 ‘장사익체’로 이름난 한글 서예를 내놨고,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을 비롯해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등이 숨은 솜씨를 자랑했다.

 장지훈 경기대 교수는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 세 글자를 강물처럼 크게 쓴 옆에 시 전문을 붙이며 서예가 뻗어나갈 수 있는 무궁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적과 서를 접목한 변영애씨의 괴서, 서예 에로티시즘을 주창하는 송봉옥씨의 ‘여(女)’ 등 전시장 곳곳에서 한국 서예인들의 창조성이 번득이고 있다.

전주=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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