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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죽느냐 사느냐 공천 전쟁, 그 결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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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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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3년 전 19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은 친박이 주도했다. 그 결과 안상수·전여옥·진수희 의원 등 친이계가 무더기로 잘려나갔다. 18대 총선에서 친이에 학살당했던 친박의 화끈한 복수였다. 특히 대구는 지역구 12곳 중 7곳이 ‘박심’을 업은 신인들로 채워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렇게 공천된 박근혜 키드들의 당선을 위해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었다. 그 결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석권했다. 하지만 3년 뒤인 지금 당의 지형은 많이 바뀌었다. 박 대통령 말을 듣지 않는 반항아들이 적지 않게 늘었다. 그 대표격인 유승민 의원은 박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한 끝에 원내대표에서 축출됐다. 하지만 두 달간 칩거한 뒤 보란 듯 항거를 재개했다. “나는 내년에 100% 공천을 확신한다. (나를 따르는 대구) 초선 의원들을 부당하게 압박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기가 막힐 것이다. “살려달라고 읍소하길래 골목 골목 누비며 당선시켜준 게 누군데…” 하는 심정일 것이다. 유 의원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분노는 범인(凡人)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그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께서 심판해달라”고 한 톤은 유난히 높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높은 음역을 깎아내는 보정작업을 거치고 나서야 전파를 탔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부산에서 만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공보진은 “정치권이 논의 중인 사항은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적극 대응하지 않고 무얼 하느냐”는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얼굴이 하얘졌다. 청와대 관계자가 부랴부랴 ‘안심번호 5 대 불가론’을 만들어 기자실로 달려온 이유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내년 총선에서 안심번호란 미명 아래 비박계 의원들이 대거 재공천되는 구도는 악몽 중 악몽이다. 자신이 직접 뛰어 당선시킨 키드들도 배신하는 판인데 비박들이 20대 국회 여당석을 점령한다면 남은 임기 내내 아무 일도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때마침 국정교과서 사태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과 김무성의 공천 갈등은 소강 상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시 휴전일 뿐이다. 뇌관은 산적해 있다. 이달 초 청와대를 떠난 민경욱 전 대변인, 박종준 전 경호실 차장의 처리도 그중 하나다. 이들이 전략공천을 받지 못한다면 친박들은 “청와대가 딱 두 명만 골라 내보냈는데 당 대표가 이들마저 내쳤으니 당·청 관계는 끝장”이라며 김무성에게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이 크다. 그뿐 아니다. 친박 의원들은 “대구·경북·강남(TKK)에서 적어도 20석은 전략공천이 돼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다닌다.

 결국 ‘TKK’를 놓고 청와대와 김무성이 빅딜을 이루지 못하면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친박계는 윤상현·김재원의 정무특보 사임에서 보듯 이미 전쟁을 전제하고 대비에 들어갔다. 만일 김무성이 끝까지 공천 빅딜을 거부한다면 친박계는 선출직 최고위원 전원이 사표를 던지며 김무성 체제를 뿌리째 흔들어댈 것이다. 원유철 원내대표까지 신박(新朴)으로 돌아선 마당이라 김무성이 받을 압박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김무성도 이미 그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홀로 지도부를 유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당헌상으론 가능한 방안이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당헌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김무성의 옛 보스 김영삼은 당대의 시대정신이던 민주화를 대변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었기에 대통령에 맞서 권력을 쟁취한 여당 대표가 될 수 있었다. 김무성이 살 길도 하나다. 계산된 공학적 행보 대신 양극화·고령화로 벼랑 끝에 몰린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치개혁에 몸을 던져야 한다. 요즘 김무성에게 사즉생(死卽生)만큼 어울리는 말은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