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림 vs 쏠쏠 … 잘 나가서 문제 되는 H지수 EL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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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이하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증권사가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8월 금융위가 발행 자제를 권고한 후 한 달 넘게 몸을 낮춰오던 증권사가 최근 H지수를 포함한 ELS 발행을 재개했다. NH투자증권·대우증권·삼성증권 등 대형사를 시작으로 미래에셋증권 등 중소형사도 발행 대열에 합류했다. 금융위 측은 “쏠림으로 인한 구조적인 위험을 예방하자는 시장의 노력에 무임승차한 행태”라고 비판하지만 증권사 측은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 손실 구간(녹인구간) 진입 가능성이 작아져 오히려 투자 적기”라고 항변한다.

편식 우려, 판매 자제하라는 당국
“시장 급락 땐 위험 … 투자자 보호를”
잠잠하다 다시 발행 나선 증권사
“수익 맞추려 투자자가 먼저 찾아”

 증권사에선 “투자자가 먼저 찾는다”고 하소연한다. 금리 때문이다. ELS 기초자산으로 주로 활용되는 지수는 S&P500·유로스톡스50·코스피200·H지수다. H지수를 제외하면 선진국 지수로 변동성이 낮다. 코스피지수 역시 박스권에 갇히면서 사정이 비슷하다. 이들 지수만으론 6~9% 수준의 예상 수익률을 맞출 수 없다는 얘기다. 중위험중수익을 바라는 투자자 입장에선 수익률이 낮으면 ELS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손님을 끌어야 할 증권사도 H지수를 포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금융위 측은 “쏠림이 심해 한국 ELS 투자금이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LS는 만기까지 증권사가 자금을 자유롭게 운용하되 6개월 마다 약속한 조건을 충족하면 정해진 금리를 보장하는 채권의 일종이다. 증권사는 기초자산 가격이 내릴 때 선물옵션을 사고 오를 때 파는 식의 거래를 반복하는 델타헤징 투자법을 주로 쓴다. H지수 관련 ELS가 늘면 H지수 선물옵션 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건 그래서다.

 이형구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올 6월 말 현재 H지수를 포함한 ELS 잔액은 36조3000억원인데 H지수 선물옵션 시장 1년 평균 미결제약정금액(거래 가능 금액)은 22조6000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시장이 급락해 ELS 대부분이 녹인구간에 진입하면 선물옵션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데, 이 경우 한국 투매 자금이 시장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이 과장은 “ELS는 증권사가 망하면 한 푼도 못받는 상품”이라며 “세계 금융위기 같은 비상 사태에 대비해 증권사 건전성을 관리해야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8월 홍콩 금융 당국이 국내 일부 증권사에 H지수 선물옵션 보유량을 축소하라고 통보한 것도 금융위 규제에 힘을 실어준다.

 모든 증권사가 금융위 규제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야구장에서 일어서면 경기를 더 잘 볼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모든 관람객이 일어서면 비효율이 발생하지 않느냐”며 “개별 투자자 입장에선 증권사 주장이 맞지만 시장의 구조적 안정이란 측면에선 금융위 규제도 일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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