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도 돌지 않는 돈 … 중국 ‘통하지 않는 통화정책’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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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파상공세다. 올 초부터 이달 23일까지 열달 정도 새에 7차례 돈의 물꼬를 열었다.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내렸고 지급준비율 네 차례 인하했다. 톰슨로이터는 “미국이 금융위기에 빠지기 시작한 2007년 9월부터 약 16개월 새에 모두 열 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며 “중국은 최근 10개월 동안에만 7차례 통화정책을 조정했다”고 25일 전했다.

 중국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예금과 대출 금리를 기준금리로 쓰고 있다. 서구식 은행간 단기 자금시장이 성숙하지 않아서다. 24일 현재 중국의 기준 예금과 대출 금리는 각각 1.5%와 4.35%다. 지급준비율은 시중은행이 받은 예금 가운데 대출하지 않고 비축해놓아야 할 비율이다. 이날 현재 17.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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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돈풀기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는 올 6월까진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따로따로 내렸다. 하지만 올 8월부턴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 인하를 동시에 발표하고 있다. 톰슨로이터는 25일 전문가의 말을 빌려 “마켓 서프라이즈(Market Surprise)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의 돈 풀기 목적은 두말 할 것 없이 경기부양이다. 인민은행(PBOC)은 “나라 안팎의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과 내수가 부진하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중국 경제의 저점은 아직 멀었다. 블룸버그 통신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 경제의 저점은 내년 3분기다. 그때 성장 예상치는 6.5%다. 회복 시작은 2017년 1분기에나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블룸버그 예상치는 “전문가들 전망의 중간값”이다. 최악의 경우 2017년 1분기에 5.5%까지 떨어질 수 있다. 시진핑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이를 막기 위해 요즘 선제적으로 돈의 파도(Money Flood)를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효과다. PBOC가 시중은행 주요 간부를 상대로 조사한 자금(대출)수요 설문에 따르면 지난달 ‘자금수요지수’는 56.7이었다. 중국이 요즘처럼 공세적으로 돈을 푼 2009년 전후엔 85 정도였다. 돈의 물꼬는 그때나 지금이나 활짝 열렸지만 자금수요는 판이하게 다르다.

 자금수요 감소는 중국 기준금리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1년만기 대출금리를 내려봐야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은 대형 국유 기업과 주택담보 대출자 정도”라고 보도했다. 중소기업 등 중국 경제의 풀뿌리는 기준금리 인하에 무덤덤하다는 얘기다.

 기준금리 한계는 시진핑이나 PBOC도 익히 알고 있는 문제다. 보완책으로 PBOC는 ‘중기대출프로그램(MLF)’을 가동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농촌을 위한 자금지원 프로그램이다. 한국은행(BOK)이 1980년대까지 공급한 특별금융(특융)과 비슷하다. 중국의 조건은 만기 6개월에 금리는 연 3.35%(기준금리는 4.35%)다. PBOC는 이달 21일에만 1055억 위안(약18조9000억원)을 11개 시중은행을 통해 중소기업 등에 풀었다.

 톰슨로이터는 “PBOC가 기준금리를 내리고 특융 창구까지 가동하고 있는데도 자금 수요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즘 중국이 돈을 푸는데도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자금수요 감소는 미국이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에, 일본이 디플레이션 시대인 1990년대에 경험했던 현상이다. 당시 두 나라 중앙은행이 파상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자금수요가 뒤따르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통화정책 발기부전(Monetary Impotence)’이다.

 자금수요는 중앙은행이 조절하기 어려운 변수다. 프레드릭 미시킨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자금수요는 중앙은행가에겐 신의 영역”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중국의 자금수요는 2013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취임한 전후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시진핑의 불운인 셈이다. 다만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중국의 자금수요 감소가 30년대 미국이나 90년대 일본처럼 나쁘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보면 자금 수요가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톰슨로이터는 “여차하면 자금수요 지수가 경기의 급격한 침체 시작을 알리는 50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라고 전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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