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이 만난 사람]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펴낸 김부겸 전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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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중·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부겸 전 의원은 학생·재야운동을 거쳐 제도 정치권에 들어왔다. 평생 정치의 길을 걷게 된 데 대해 “고교 때부터 신문을 2개나 읽을 정도로 공익적 관심이 컸다. 선배·선생님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내가 군포에서 4선을 하면 그건 월급쟁이다.”

정당 질서에 구애 안 받는 온건·합리적 정치그룹 만들 것

 3년 전인 19대 총선 당시 3선(16~18대)을 한 지역구(군포)를 포기하고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 출마했던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대구 수성갑 지역위원장) 전 의원이 한 말이다. 하지만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대신 지역주의 도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20대 총선 ‘재수’에 나서면서 『우리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더난출판)란 정치 토크집을 냈다.

 지난 19일 행사 참석차 잠깐 서울에 들른 김 전 의원을 만났다. 그는 “많은 사람의 좌절과 분노, 헬조선(한국이 지옥에 가까운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뜻의 신조어)이라고 울부짖는 청년들의 문제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정치권이 이걸 풀어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패를 나눠 우리 편은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풍토에선 해법을 찾기 어렵다”며 “온건·합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여야의 정치인들이 새로운 정치그룹을 만들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다면 정당 질서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적 의견그룹을 만드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선 “정치권 선무당들은 손을 떼고 전문가·역사학자들의 대토론회에 맡겨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체사상을 교육한다고 하는 여당 주장은 턱없는 얘기고 친일논쟁, 박정희 대통령 미화논쟁으로 몰고 간 야당 지도부는 사려 깊지 못했다”고 여야를 질타했다.

 - 멀쩡한 지역구를 놔두고 대구에 출마한 게 정치생명 연장을 노린 정치쇼란 시각도 많다.

 “배지 다는 게 목표라면 왜 대구로 갔겠나. 나는 국회의원으로 살아남았지만 응어리를 풀지 못한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 나를 움직이게 한 거다. (19대 총선에서) 대구 시민들이 한 30% 줬으면 포기했을 텐데 40.4%를 주셨다. 도망가면 내가 나쁜 놈이 된다.”

 - 내년에 당선되면 정당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정치그룹을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대구·경북에서 한두 명 야당 후보가 되고 저쪽에서 이정현 의원 등 몇 사람이 당선된다면 국민이 ‘더 이상 지역주의를 갖고 우리들 삶을 선동하지 말라’는 사인을 보낸 것으로 봐야 한다. 청년실업, 고령화, 성장동력을 잃은 경제, 제 방향을 못 찾고 있는 복지 시스템 등에 대한 답을 내는 데 경상도·충청도·전라도가 다르지 않다는 사인이기 때문에 여기에 동의하는 여야의 세력을 모아 의견그룹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 신당을 만들 건가.

 “정당으로까진 생각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당 질서에 구애받지 않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정치의견그룹부터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정당은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

 - 유사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실패했다.

 “과거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스들의 힘이 너무 세 (통합론자들이) 번번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이제 빅보스도 없고 지역 문제도 옅어져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이번엔 성공할까.

 “안철수 현상이 꺼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안철수 의원이 이걸 제대로 거둬 성과물을 못 낸 채 정치권에 들어왔지만 10%대의 지지가 나오는 건 그 기대나 꿈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중간지대에 저처럼 고민하는, 온건·합리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다만 공천이나 당선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입을 다물고 애써 못 들은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 지역주의에 도전해 성공 신화를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롤 모델인가.

 “저와 달리 그분은 철저하게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도전하고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열정 덩어리의 매력이 있다. 저는 답답하다고 할 만큼 신중파다. 젊을 때 학생·재야운동을 하면서 열정으로 세상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보니 책임감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게 저를 늘 짓누르고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할 때마다 신중해지게 됐다. 그러나 한번 움직이면 반보나 한 보 정도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 싶다.”

 - 노 전 대통령과 다른 점은 뭔가.

 “노 전 대통령이 진보의 가치에 자기를 던졌다면 나는 진보라기보다 양쪽의 공존,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존을 통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데 방점을 두고 싶다. ‘노무현 방식’은 내 스타일이나 삶의 태도와 안 맞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생·공존을 얘기한다. 당장은 인기가 없더라도 언젠가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제 스스로가 비주류 의식은 없다. 그러니까 보수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 같은 합리적 지도자가 나오니까 대단히 기쁘다. 내가 한국의 주류, 보수세력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보수가 책임지고 짐을 지고 갈 생각을 해라. 남북 문제도 진보정권이 아니라 보수정권에서 한 단계 진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5000만이 내부 갈등 없이 합의할 수 있다’는 거다.”

 - 노 전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같은 인내와 치밀함이 있었더라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양반이 의욕은 대단히 앞섰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 관료들을 추동하는 과정, 지지자와 지지자 아닌 사람들을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 일방적이었다.”

 - 당선되려면 야당보다 무소속이 낫지 않나.

 “많은 사람이 ‘당을 잘못 선택했다. 무소속이면 무조건 된다’고 말씀한다. 나도 왜 그런 갈등이 없겠나. 우리 당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매일 등에 칼을 꽂는 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30~50대를 만나보면 이 사람들이 김부겸에게 요구하는 게 있다. 하나는 30년 동안 맹목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해줬는데 전국에서 가장 힘든 도시로 만들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바꾸고 싶다고 하는 정당한 분노다. 또 하나는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싶은 거다. 대구는 야당이 당선될 수 없는 지역이 아니라는 걸 보이고 싶어한다. 그분들에게 새정치연합이든 민주당이든 관계없다. 기존 질서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야당 후보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그 기대를 저버릴 순 없지 않나.”

 - 당선을 확신하나.

 “표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19대 때는 캠페인 자체가 힘들었다. 명함을 주면 면전에서 ‘빨갱이당 아니야’ 하면서 집어던지고 찢어버리니까. 나야 참을 수 있지만 선거 도와주러 나온 딸(배우 윤세인)은 울어버렸다. 요즘엔 저녁에 술집 가면 내가 짱이다. 내 얼굴 알아보고 다가와서 술 주면서 ‘요번엔 바뀌어야 됩니다’라고 격려해준다.”

 30년 가까운 김 전 의원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통합’이다. 학생운동(서울대 정치학과)을 하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계기가 된 게 1987년 양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단일화 실패였다. “이때 받은 좌절과 충격이 너무 커 내가 직접 해보자”고 맘먹었다. 이듬해 총선에서 장을병·제정구 전 의원 등이 이끌던 한겨레민주당으로 서울 동작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한다. 두 번째 시련은 통합추진회의(통추)의 해체였다. 통추는 95년 DJ가 정치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야권분열 반대, 지역주의 극복을 내걸고 결성된 모임이다. 그러나 3김의 지역분할 정치에 함몰, 97년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기·김정길 전 의원, 유인태·원혜영 의원 등이 DJ 지지를 선언하면서 해체됐다. 그는 “양쪽 빅보스들이 너무 세니까 결국 우리가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몌별(袂別·도포 자락을 찢으면서 헤어지는 것)의 아픔으로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빈민·인권운동가인 제정구 전 의원에게서 자극과 가르침을 받는다. 이어지는 회고.

 “제 전 의원은 설움과 배신을 당하면서도 다 이겨냈고 끊임없이 자기를 다스려온 치열한 인간이고 큰 그릇이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강연에서 ‘죽을 날이 가까워오니 그동안 의미 없이 스쳐가던 것들이 다 새로워 보인다. 사람과 사물이 서로 극복될 존재가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 서로에게 존재의 틀을 만들어주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말을 남겼다. 이 예언적인 말이 내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김 전 의원에게 어떤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지 물었다. 선문답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분단의 책임이 미국이냐 소련이냐를 놓고 좌우 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혜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7년 무장투쟁의 지도자인 만델라(전 남아공 대통령)는 백인들을 감옥 보내는 대신 사면해줬다. 만델라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런 지혜가 어디서 나올까 감탄한다.”

[S BOX] 문 대표 절박함 못 느껴 … 비주류 만나 필요한 것 수용해야

김부겸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비노 갈등에 대해 일침을 가하며 ‘공존의 길’ 모색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야권 전체를 다 합쳐 최대 지지를 받았을 때도 35% 득표를 넘은 적이 없다”며 “이러다가 야당이 다 망하고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 정말 두렵다. 일본 아베의 자민당이 브레이크 없이 쭉쭉 나가는 것처럼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보수 일로로 나가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느냐”고 했다.

- 친노 패권이 문제라고 보나.

“꼭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안철수-김한길 체제에선 왜 일패도지했나. 근본적으로 우리 당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겠다고 약속했으면 책임감·진정성·끈질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지 않나. 그러니까 우리를 정치자영업자 조합이라고 비아냥대는 것 아닌가.”

- 통합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 선출을 다시 하자고 했는데.

“야권의 세력을 하나로 끌어모으려면 통합전대라는 하나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이걸 문재인 권력을 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치나. 또 문재인 대표와 친노가 동의 안 하는데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지 않은가.”

- 문 대표가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의 친노들을 물리치고 좋은 사람들을 기용하라고 하는데 왜 못하나. 그 정도 수준 가지고 어떻게 총선을 치르나. 문 대표가 절박함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문 대표 주도하에 비주류, 장외 인사들을 접촉해 보고 감당할 것과 못할 것을 정리하고 나서 감당 못할 것이라도 야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부분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도 못하겠다고 하면 문 대표 책임을 물어야 된다. 문 대표만으론 돌파가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럼 문 대표 없이는 되나.”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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