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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삶은 욕동 관리에 달려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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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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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연전에 한 구청 문화센터에서 강연한 일이 있다. 아침 시간 강당에 모인 이들은 대체로 장년 이상 연배였는데, 자발적 참여라기보다는 구청에서 받는 혜택에 옵션으로 붙은 의무를 수행 중인 듯했다. 그런 방법으로라도 주민들에게 위로와 성찰을 제공하려는 주최 측의 노력도 짐작되었다. 강연 주제는 이 지면의 글과 동일한 범주에서, 특별히 남자의 욕동 관리법에 관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한 인간의 삶의 성패는 리비도 영역의 욕동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왔다. 욕동이란 분노 같은 파괴적 감정과, 성욕 같은 원초적 본능이 뒤섞인 에너지다. 보통의 성숙한 사람은 승화적 방법으로 욕동을 처리한다. 신체 운동이나 건강한 취미 생활, 창조적 예술 활동 같은 것. 그보다 덜 건강한 이들은 욕동 에너지에 끌려다니며 자기파괴적 행위 쪽으로 이동한다. 술이나 마약 등 중독 물질에 탐닉하거나, 거듭되는 외도로 생을 낭비한다. 그중 최악은 욕동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한 채 친밀한 상대에게 쏟아내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이들을 파괴한다. 아내나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이별을 말하는 연인에게 극단적 위해를 가한다. 강연의 큰 틀은 그런 내용이었고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일화를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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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이 끝난 후 청강자였던 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일행 중 나보다 위 연배로 보이는 남자가 곁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왜 결혼을 못했는지 알겠네.” 명백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였고 입꼬리까지 비틀어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50년 이상 살다 보면 그런 반응이야 간식처럼 만나는 거라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그는 강연장에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이 불편해졌고, 불편한 욕동을 곧바로 내게 집어던진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왜 강연을 불편해했는지 생각해 봐야 했다. 나 역시 그에게서 건네받은 불편한 감정을 이해하고 해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남자들의 못난 측면을 들추며 그들을 모욕하려 한다고 느낀 것 같았다. 어쩌면 공격당한다고 느꼈을지도 몰랐다. 박해감 위에는 나르시시즘도 작용하는 듯했다. 옳고 선하고 정당하다고 믿어온 자기 이미지가 흔들리는 이야기를 듣기 불편했을 것이다. 남자들이 공격받았다고 여기며 한층 공격적으로 변하는 지점에는 대체로 나르시시즘이 깨어지는 고통을 회피하는 방어기제가 작용한다. 그 무엇보다 그의 나르시시즘에 생채기를 입힌 요소는 ‘어린, 여자’에게서 그것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