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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동발표문 한 장 못 낸 대통령·여야 5자 회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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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원내대표가 22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새누리당 김무성·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3자 회동을 한 이래 7개월 만이다. 이번 회담은 청와대와 야당이 참석 범위와 대변인 배석 여부를 놓고 다투다 결렬 위기까지 간 끝에 서로 한발씩 물러서 성사됐다. 여야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김·문 대표의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진흙탕 싸움을 벌여온 상황에서 ‘대화 정치’가 복원된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합의는커녕 공동발표문조차 내지 못한 회담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특히 핵심 쟁점인 교과서 문제를 놓고 30분 넘게 격론을 벌였지만 한 치의 공감대도 찾지 못해 회담의 의미가 크게 퇴색됐다. 박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한 반면 문 대표는 “국민은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 생각한다”고 해 인식의 격차만 드러냈다. 양측이 상대방의 우려를 경청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했다면 접점 찾기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으리란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노동개혁 법안과 내년 예산안을 정기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야당은 국제의료지원사업법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처리에만 동의해 ‘민생 회담’을 하겠다던 다짐을 무색하게 했다. 박 대통령 역시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과 관련해 김관진 안보실장, 한민구 국방장관을 문책해야 한다는 문 대표의 요구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아 ‘불통’ 비판을 자초했다.

 이번 회담은 정치권이 ‘교과서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시급한 국정 현안을 매듭짓고 내년 총선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1시간48분간 자기 할 말만 한 끝에 결실 없이 끝나버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는 회담이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를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함)의 자세로 현안을 풀고 법안·예산 처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