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구조조정 미뤄 혈세 4조원 더 퍼주게 된 대우조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결국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됐다. 정부와 채권단은 어제 긴급 회의를 열어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α 의 패키지 지원을 결정했다. 1조원의 유상증자와 3조원의 신규 대출, 출자전환 약 1조원이다. 상반기 3조원 넘는 적자를 낸 대우조선은 하반기에도 2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그대로 놔두면 부채비율이 연말엔 4000%까지 치솟아 신규 수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자금 지원에 앞서 임금 동결과 노동쟁의 행위 금지, 인건비 절감 등 워크아웃에 준하는 자구계획을 대우조선 노조에 요구하기로 했다.

 불가피한 결정이라지만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세계 1~3위 조선사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출혈·저가 경쟁을 벌일 때부터 이런 사태는 예상됐던 바다. 성동조선·STX 등 중소 조선사가 줄줄이 쓰러질 때 업계에선 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경고를 수없이 보냈다. 하지만 정부·채권단 누구도 자기 일이 아니라며 나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대우조선이 낙하산 인사와 부실 경영으로 살이 썩고 고름이 흐르는데도 못 본 척했다. 전임 사장은 연봉과 보너스로 한 해 9억원을 받아갔다. 노사는 지난달 임금 협상에서 1인당 평균 900만원의 격려금 지급에 합의했다. 위에서 아래까지 국민 혈세로 달콤한 파티만 즐긴 것이다. 민간 기업이라도 국가 기간산업이 잘못되면 정부·채권단이 나서는 게 정도다. 하물며 대우조선은 외환위기 때 2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들여 살려낸 사실상 공적 기업 아닌가.

 이번 자금 지원이 대우조선을 단순 연명시키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조선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조정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뼈를 깎는 자구계획과 함께 합병·매각 등 과잉설비를 줄이고 경쟁력 회복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 혈세를 축낸 부실 경영에 대해선 무겁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우조선과 대주주인 산업은행 경영진은 물론 이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