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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조지와 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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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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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두 명의 영국인 조지에 대한 얘기다.

 우선 조지 매카트니다. 지금으로부터 222년 전 중국의 문을 두드린 외교사절이었다. 자유무역을 요구했다. 중국으로선 ‘천명’을 요구하지도 조공을 약속하지도 않은 첫 ‘야만족’이었다. 황제를 만나려 했는데 문제는 의전이었다. 특히 삼궤구고두(三?九叩頭)였다. 무릎을 꿇고(궤)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이기(고)를 세 차례씩 도합 3번 되풀이하는 절 말이다.

 매카트니는 거절했다. 신하가 아니란 이유에서다. 결국 몇 주간의 실랑이 끝에 중국 황제 뒤에 영국 국왕의 초상화를 걸고 한쪽 무릎만을 굽히기로 낙착을 봤다. 중국은 “황제의 존엄에 대한 경외심에 압도돼 결국 고두를 했다”고 기록했지만 말이다. 영국인들 뇌리에 ‘kowtow(카오타오)’를 새긴 계기였다. 처음엔 그저 ‘절’을 뜻했는데 이내 ‘굴종’이란 뉘앙스가 됐다.

 또 다른 조지는 조지 오즈번이다. 야심만만한 현재의 재무장관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영국의 극진한 환대의 이면에 있는 인물이다. 영국이 중국 최고의 서방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전략을 실행하는 이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달 1주일 가까이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땅이 넓다한들 타국의 재무장관이 그토록 오래 머문다는 게 이례적이었다. 더 튄 건 신장(新疆) 방문이었다. 중국은 테러리스트들이 준동한다고 주장하지만 서방의 눈엔 소수민족인 투르크계 위구르인이 탄압받는 곳이다. 오즈번은 공개적으론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채 “중국과 함께하는 황금시대”를 소망했다. 중국이 오즈번의 실용주의에 탄복할 정도였다. 올 초 영국이 서방에서 처음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 선언토록 한 이도 오즈번이었다. 영국에선 “머리만 땅에 안 댔지 고두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두 조지의 선택은 다르다. 200여 년 사이 영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선대가 제국 부상기였다면 이젠 강대국이란 허울만 남았을 뿐 독일에도 밀리는 신세가 됐다. 중국 자체도 다시 G2다.

 지금의 조지가 옳았는지 역사가 말해줄 게다. 그러나 실리를 추구하는 대범함에 눈길이 간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신이 여신이고 당신이 그녀를 얻고자 한다면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운명의 신이 여신인지 모르겠으나 과단성은 요즘 시대에도 귀중한 자질이다.

고정애 런던특파원